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2권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____ 06. 겨울 정원, 꽃, 스완 부인의 살롱

de.kim.528 2020. 4. 16. 22:52

 


그 해 어느 거리에서나 아파트가 보도에서 너무 높이만 있지 않으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흔히 볼 수 있었던 '겨울 정원'은, 오늘날에 와서는 P.J.스탈의 새해 선물용 그림 장식이 있는 책자에서만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의 루이 16세풍 살롱의 드문 꽃 장식과는 - 장미꽃 또는 일본 붓꽃 한 송이가 더는 꽂을 수 없는 목 기다란 크리스털 꽃병에 꽂힌 - 대조적으로 집 안에 수많은 실내 식물들을 넘쳐나게 한 것과 식물 배치에 대한 기술의 절대적인 부족 탓에, 주부가 정물화 장식에 무관심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식물학에 대한 그녀의 뭔가 살아 있는 감미로운 열정에 부합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당시 저택에서 찾아볼 수 있던 이 커다란 규모의 '겨울 정원'은 또 한 손에 들고 다니는 작은 온실을 환기했는데, 1월 1일 새벽에 켜진 등불 밑에 놓인 다른 새해 선물 중 - 아이들이 초조해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던 - 가장 아름다웠으며 거기서 기를 수 있는 식물과 더불어 겨울의 헐벗음으로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아니, 이 겨울 정원은 온실 자체보다는 그 옆에 놓인 또 다른 새해 선물인 장정이 아름다운 책에 그려진 온실과 더 흡사했으며, 이 온실은 아이들이 아니라 책의 주인공인 릴리 양에게 주어졌지만 그래도 아이들 마음을 얼마나 황홀하게 했던지, 지금은 거의 늙은이가 된 그들에게 그들의 행복했던 시절 중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리고 길에서 보면 불이 환히 켜진 유리창이 마치 아이들 책에 그려진 또는 진짜 온실의 창문처럼 보이며, 그런 다양한 나무들이 우거진 겨울 정원의 맨 구석에서, 지나가는 행인이 발끝을 치켜들고 바라보면 대개는 연미복 차림에 치자 꽃이나 카네이션을 단춧구멍에 꽂은 남자가 의자에 앉은 여인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최근에 수입한 사보마르 수증기에 감싸여 마치 토파즈에 새겨진 두 형상처럼 호박 빛 감도는 살롱 분위기를 배경으로 아련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모바르에서는 김이 나오지만 이제는 친숙해져서 어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되었다.

 

/

 

스완 부인의 살롱에서 꽃들은 단순히 장식적인 특징만을 띠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대와는 무관한, 어느 정도는 오데트가 과거에 보냈던 삶과 관계가 있었다. 유명한 화류계 여자로서 많은 시간을 정부를 위해 살았으며,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집에서 보냈으므로, 이 점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살도록 했다. 정숙한 여인 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건, 그래서 그 정숙한 여인에게 중요하게 보일 수 있는 물건들은 화류계 여인에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녀 일과에서의 정점은 사교계에 나가려고 옷을 입을 때가 아니라, 남자를 위해 옷을 벗을 때다. 외출복을 입을 때와 마찬가지로 실내복이나 잠옷을 입어도 우아하게 보여야 한다. 다른 여인들이 보석을 과시할 때 그녀는 진주의 내밀함 속에 산다. 이런 삶이 은밀한 사치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드디어는 그에 대한 취향, 다시 말해 거의 비타산적이라 할 수 있는 취향을 부여한다. 스완 부인은 자신의 사치스러운 취향을 꽃에 쏟아부었다. 그녀의 안락의자 옆에는 파르마 바이올렛이나 마거리트 꽃잎을 띄워 놓은 커다란 크리스털 수반이 놓여 있었는데, 이 수반은 그 집에 도착한 손님 눈에 그녀가 좋아하는 일, 이를테면 자신의 기쁨을 위해 혼자 차를 마시다가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게 했다. 또는 보다 내밀하고 보다 신비스러운 일로 방해를 받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손님은 흩어진 꽃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펼쳐진 책 제목이 오데트가 방금 했던 독서를, 또는 그녀의 현재 생각을 보여 주는 듯해서 용서를 빌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책들보다 꽃은 더 살아 있었다. 스완 부인을 방문하러 들어가면서 그녀가 살롱에 혼자 있지 않은 걸 보거나, 또는 누군가가 그녀와 함께 돌아왔을 때 살롱이 비어 있지 않은 걸 보면 거북해지곤 했는데, 그만큼 꽃이 살롱에서 신비로운 자리를 차지하며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주인의 삶의 시간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꽃은 오데트의 방문객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거기 그녀에게 잊힌 채 그녀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앞으로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어, 사람들은 방해나 되지 않을가 걱정하면서도 그 대화의 비밀을 해독해 보고자 물에 씻겨 연해지고 녹아든 파르마 바이올렛의 보랏빛에 눈길을 고정해 보려 했지만 이런 시도는 번번이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

 

오데트는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는 살롱에 다양한 색깔의 커다란 국화꽃을 들여놓았고, 이 커다란 국화꽃들은 예전에 스완이 그녀 집에서 보지 못했던 꽃들이었다. 이런 국화꽃을 내가 찬미하게 된 것은 - 스완 부인에게 그 슬픈 방문을 하던 어느 날, 내 슬픔 때문에 다음 날 질베르트에게 "네 친구가 날 방문했었단다."라고 말할 질베르트 어머니로서의 스완 부인을 감싸고 있는 그 신비로운 시를 그녀 주위에서 느꼈을 때였다. - 아마도 루이 15세풍 안락의자를 감싼 비단처럼 연한 분홍빛, 또는 그녀가 입은 크레프드신 실내복처럼 하얀 눈빛, 사모바르처럼 금속성 붉은빛을 띤 가지각색 국화꽃들이 살롱 장식에 추가적인 장식을, 똑같이 풍요롭고 섬세하며 살아 있기는 하지만 며칠밖에 가지 않는 장식을 겹쳐 놓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국화꽃들이 11월 땅거미가 질 무렵 안개 속에서 화려하게 타오르는 저녁놀처럼 그렇게 분홍빛이거나 구릿빛이면서도 그 빛깔만큼 그렇게 덧없지 않고 비교적 오래가는 것을 보고 난 그만 감동햇다. 그리고 스완 부인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하늘에서 얼핏 보았던 그 사라져 가던 저녁놀이 집 안에서 다시 꽃들의 불타는 팔레트 형태로 연장되고 옮겨 온 것을 보았다. 인간의 처소를 장식하기 위해 어느 위대한 채색가가 불안정한 대기와 태양으로부터 분리한 듯한 그 불꽃과도 같은 국화꽃은, 내 슬픔에도 불구하고 차를 마시는 동안 내 옆에서 내밀하고도 신비스러운 광채를 타오르게 하여 그토록 짧은 11월의 기쁨을 탐욕스럽게 음미하도록 초대했다. 아! 슬프게도 난 내 귀에 들리는 대화를 통해서는 그 찬란한 빛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이런 국화의 광채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었으니까.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