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3권 / 게르망트 쪽 ____ 11. 엘스티르의 그림

de.kim.528 2020. 5. 6. 14:52

 


 

엘스티르의 그림 앞에 홀로 남겨진 나는 저녁 식사 시간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발베크에 있을 때처럼 나는 또 한 번 이 위대한 화가에게서, 사물을 보는 특별한 방법의 반사에 지나지 않은 낯선 빛깔의 세계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의 편린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동질적으로 보이는 그림들로 뒤덮인 벽의 부분은 흡사 마술 환등기가 비추는 빛나는 이미지들과 흡사했고, 그 경우 환등기는 화가의 두뇌라고 할 수 있으므로 우리가 단지 인간만을 알았다면 - 다시 말해 등잔에 채색된 슬라이드 판을 끼워 넣기 전에 환등만 씌웠다면 - 그 기이한 모습을 결코 상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그림들 가운데서도 사교계 인사들에게 가장 우스꽝스럽게 보인 그림 몇 점이 여타의 그림들보다 특히 관심을 끌었는데, 우리가 이성으로 추론하지 않으면 대상에 대한 인식이 불가능함을 증명하는 착시 현상을 그 그림이 다시 만들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 앞에서 강렬한 빛을 받은 벽이, 깊이의 신기루를 만들었을 뿐인데도, 우리는 얼마나 여러 번 마차를 타고 우리 앞 몇 미터 되지 않는 곳에서 길게 빛나는 길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가! 그러므로 단순한 상징주의 기교가 아니라 인상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진지한 욕망에 의해, 섬광 같은 첫 순간 우리가 포착한 사물 그대로 재현하는 편이 더 논리적이지 않을까? 사물의 표면과 부피는 실제로 우리가 사물을 인식했을 때 기억이 붙이는 이름과는 무관하다. 엘스티르는 자신이 느낀 것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노력은 우리가 자주 시각이라고 부르는 그 논리적 추론의 집합체를 해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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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오후 한나절을 뚜렷이 드러내 보이는 그 사각형 캔버스의 그림에는, 강물이며 여인들의 옷이며 배의 돛들이며 이런저런 요소로부터 나온 수많은 반사광들이 나란히 놓였다. 여인의 옷에서 우리를 황홀하게 한 것이 잠시 더위와 숨막힘으로 춤추기를 멈추고, 같은 방식으로 멈춘 돛의 천과 작은 항구의 물, 나무 부교와 나뭇잎과 하늘에서 아롱거렸다. 내가 발베크에서 본 어떤 그림에는 청금석 빛깔의 하늘 아래서 대성당 자체만큼이나 아름다운 병원 건물이 이론가로서의 엘스티르를, 중세를 사랑하는 훌륭한 안목의 엘스티르를 넘어서는 그런 대담함으로 그려져 "고딕 예술이나 걸작 같은 것은 없지만, 이런 특색 없는 병원이 저 영광스러운 대성당 정면만큼이나 가치 있다." 라고 노래하는 듯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산책 중인 예술 애호가도 바라보기를 피할 것 같은, 자연이 그의 눈앞에 제시하는 시적 장면으로부터도 배제된 듯 보이는 조금은 천박한 여인 역시 아름답고, 여인의 옷은 배의 돛에 떨어지는 빛과 동일한 빛을 받으며, 조금 더 소중하고 조금 덜 소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평범한 옷이나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돛도 모두가 동일한 빛을 반사하는 두 거울일 뿐이다. 모든 것은 화가의 시선에 달려 있다."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화가는 시간의 움직임을 이 빛나는 순간, 여인이 더워서 춤추기를 멈추고, 나무가 그림자로 주위를 에워싸고 돛이 금빛 바니시 위를 미끄러져 가는 이 빛나는 순간에 영원히 고정시킬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 얼마나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압도했던지, 또 고정된 화폭이 얼마나 덧없는 인상을 주었던지, 우리는 그림 속 여인이 곧 집으로 돌아가고, 배는 사라지고, 그림자는 이동하고, 밤은 다가오고, 그리하여 쾌락의 순간은 끝나고, 삶은 흘러갈 것이며, 나란히 이웃하는 수많은 반사광으로 한꺼번에 조명되던 순간들도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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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스티르의 그림을 보는 동안 저택에 도착한 손님들의 초인종 소리가 울리다 그치다 하면서 날 부드럽게 잠재우는 듯했다. 그러나 초인종 소리에 뒤이어 이미 오래전부터 계속되던 정적이, 마치 린도르의 음악을 뒤잇는 정적이 베르톨로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듯 - 사실 그보다는 덜 빨랐지만 - 몽상에서 나를 깨어나게 했다.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리고 식탁에 앉지나 않았는지 걱정하며 재빨리 살롱 쪽으로 갔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게르망트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