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3권 / 게르망트 쪽 ____ 12.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살롱

de.kim.528 2020. 5. 6. 22:17

 


 

식사를 내오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곧 겹겹이 이어진 거대한 문들이 동시에 돌아가면서 식당 문이 활짝 열렸다. 의식의 주관자처럼 보이는 집사가 파름 대공 부인 앞에 몸을 기울이며, 마치 "마님께서 위독하십니다."라는 말을 전할 때와 같은 어조로 "부인,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하고 알렸다. 하지만 이 소식은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어떤 슬픔도 야기하지 않았고, 손님들은 짝 지어 쾌활한 표정으로 마치 로뱅송에서의 여름날처럼 서로의 뒤를 따라 식당 쪽으로 가더니 자기 자리 앞에 도착해서야 서로 떨어졌으며, 하인들이 그들 뒤로 의자를 밀어 넣었다. 게르망트 부인이 내가 부인을 식탁에 데려가도록 하려고 맨 마지막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걱정했던 것만큼 수줍음을 타지 않았다. 근육을 움직이는 뛰어난 기술로 우아한 동작을 쉽게 하는 사냥꾼인 부인이, 아마도 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는 걸 보았던지, 매우 능숙하게 내 주위를 한 바퀴 빙 돌더니 내 팔 위에 자신의 팔을 올려놓고 자연스럽게 정확하고도 고상한 동작의 리듬으로 나를 감쌌기 때문이다. 나는 부인의 이러너 동작을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따를 수 있었는데, 게르망트네 사람들이 거기에 별 중요성을 두지 않는 모습이, 마치 진정한 학자가 지식을 별로 중요시하지 않아 이런 학자 옆에 있는 것이 무식한 사람 옆에 있는 것보다 덜 무섭게 느껴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였다. 또 다른 문들이 열리면서 김이 나는 뜨거운 수프 그릇이 들어왔고, 저녁 식사가 교묘하게 장치된 '인형극'에서 벌어지듯, 젊은 손님의 늦은 도착에 주인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모든 장치가 작동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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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이 다른 남자들이나 여자들처럼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발베크나 피렌체와 파르마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만나기 전에 이미 그들에게서 그 이름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살롱에서 내가 예전에 작센 도자기 인형처럼 상상했던 여인들은, 대다수 여인들과 더 많이 닮아 있엇다. 하지만 발베크나 피렌체와 마찬가지로 게르망트네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보다는 그들과 신분이 비슷한 사람들과 더 흡사하여 내 상상력을 실망시켰지만, 그대로 다음 순간에는 아주 미세하게나마 그들을 식별할 수 있는 몇몇 특징을 내 지성에 제공해 주었다. 그들의 외모도, 때로 보랏빛마저 감도는 특이한 분홍빛 살갗이며, 남자에게서조차 지극히 섬세한 머리털이 거의 광채를 발하면서 부드러운 금빛 실 뭉치로 덩어리 진 모습이 마치 벽에서 서식하는 지의류와 사자 털의 중간에 속하는 어떤 금발, (그 빛나는 광채는 지성의 번득임에 상응하는 듯 보였는데, 왜냐하면 게르망트네 사람들의 살갗과 머리칼을 논하는 것은, 모르트마르 - 루이 14세 이전부터 가장 정교한 사교적 자질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또 그들 자신이 이런 사교적 자질을 자랑하고 자녔으므로 모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아 온 - 의 에스프리와 마찬가지로 게르망트의 에스프리를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이 여기저기 끼어든 귀족 사회라는 질료 자체에서 (아무리 귀중한 질료라 할지라도) 게르망트네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고 식별할 수 있게 했으며, 또 마치 벽옥과 줄무늬 마노에 금빛 줄무늬를 그리는 광맥처럼, 아니, 흐트러진 머리칼 끝이 굴절하는 광선인 양 이끼 마노의 옆면에서 구르는 그 빛나는 머리칼의 유연한 파동처럼 그들을 쫓아가게 했다.

게르망트네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이 이름에 합당한 이들에게는) 살갗이나 머리칼, 맑은 눈길이라는 멋진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일어서고 걷고 인사하고 악수하기 전에 바라보고 손을 잡을 때에도 그들만의 특별한 방식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마치 사교계 인사가 작업복을 입은 농부와 다르듯이 여느 사교계 인사와도 달랐다. 그래서 그들의 친절한 태도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색하지는 않아도 그들은 우리가 걷고 인사하고 외출하는 걸 보면서, 이 모든 몸짓을 자신들이 하면 제비가 날듯, 장미꽃이 기울어지듯 우아한 몸짓이 되기에 '저 인간들은 우리 게르망트네와는 인종이 달라. 우리는 지상의 왕자야.'라고 생각할 권리가 정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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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망트네 사람들은 신체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지적인 관점에서도 특별했다. 질베르 대공을 제외하고 ('마리질베르'의 남편인 그는 구식 사고를 하는 인간으로, 마차로 산책할 때도 같은 왕족이지만 자기보다 혈통이 열등한 아내를 - 어쨌든 그는 예외적인 존재니까, - 왼쪽에 앉히고 산책했으므로,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집안의 조롱거리이자 늘 새로운 얘깃거리의 대상이 됐다.) 게르망트네 사람들은 귀족만의 순수한 '상류 사회' 속에 살면서도 전혀 귀족들을 존중하지 않는 척했다.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이론은 - 지나치게 게르망트 사람다운 탓에 어떤 점에서는 게르망트와는 다른, 뭔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 다른 무엇보다도 지성을 높이 평가하고, 정치 분야에서는 지극히 사회주의적인 면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부인의 저택 구석에 귀족 생활의 유지를 담당하는 수호신이 숨어 있어 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응접실이나 살롱과 화장실에 웅크렸다가, 작위 같은 걸 믿지 않는 부인의 하인들에게는 '공작 부인'이라고 말하게 하고, 오로지 독서하기만을 좋아하고 남들에 대한 체면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부인에게는 8시가 울리면 사촌 동서 집 만찬에 가기 위해 가슴을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게끔 환기하는 게 아닐까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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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대 언어의 잡다하고 뒤섞인 표현에 지칠 때면, 비록 게르망트 부인의 얘기가 별다른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한담을 듣는 일은 큰 휴식이 되었고, 만약 그녀와 단둘이 있으면서 그녀가 말의 흐름을 제한하고 더 맑게 할 때면 마치 옛 노래를 들을 때와 같은 휴식을 느꼈다. 그때 게르망트 부인을 바라보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녀 눈 속의 끝없이 고요한 오후 빛에 갇힌 일드플아스와 상파뉴의 하늘이 생루의 눈과 같은 각도로 비스듬하게 푸른빛으로 펼쳐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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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부인은 내가 부인에게서 추구했던 것과 - 게르망트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매력 - 거기서 발견했던 아주 작은 것, 즉 게르망트에 남아 있는 시골 흔적에 대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의 관계는 이처럼 내 찬미가 그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여인을 향해 보내지는 대신, 똑같이 평범하며 똑같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매력을 발산하는 다른 여인 쪽을 향하면서 반드시 나타날 그런 오해에 기초했다. 그토록 자연스러운 오해는 몽상가인 젊은이와 사교계 여인 사이에 늘 존재할 것이며, 또 젊은이는 자기 상상력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연극이나 여행 또는 사랑에서마저 느끼듯이, 다른 존재들 옆에서 틀림없이 느끼게 될 그 불가피한 환멸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깊은 혼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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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네덜란드로 여행을 가면서 하를럼에 가지 않을 수가 있죠?" 하고 공작 부인이 외쳤다. "십오 분밖에 시간이 없다 해도 할스의 작품들은 꼭 봐야 할 만큼 뛰어나요. 할스의 작품이 만약 야외에 전시되어 누군가가 전차에서 내리지 않고 전차 위 칸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면, 두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보라고 꼭 말해 주고 싶어요."

이 말은 마치 예술적 인상들이 우리 마음속에 형성되는 과정을 무시하는 듯하여 내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 경우 우리 눈은 단순히 스냅 사진을 찍는 기록 장치에 불과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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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망트라는 이름의 다가갈 수 없는 언덕을 올라갔다가 공작 부인의 삶이라는 내적인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거기서 내게 친숙한 빅토르 위고나 프란스 할스의 이름을, 그리고 슬프게도 비베르의 이름을 발견하면서, 나는 마치 중앙 아메리카나 북부 아프리카의 작은 야생 골짜기를 여행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같은 놀라움을 느꼈다. 여행자가 그곳의 기이한 풍속을 상상하기 위해 지리적 거리감과 낯선 식물 명칭들을 참조한 후 거대한 알로에나 만치닐 나무 숲의 장막을 통과했을 떄, 원주민들이 (때로는 로마식 노천극장과 아프로디테에게 헌정된 원기둥 유적 앞에서) 볼테르의 「메로포」나 「알지르」를 읽는 모습을 발견하고 느낄 법한 그런 놀라움이었다. 내가 알던 교양 있는 부르주아 여인들과 그토록 멀리 있고 그토록 뛰어난 게르망트 부인이 그녀가 평생 알지 못할 부르주아 여인들 수준으로 차후의 목적이나 야심도 없이 낮추려고 애쓰는 그 교양은, 뭔가 페니키아 고대 문명에 대한 학식이 정치가나 의사에게서 그러하듯, 쓸모가 없기에 더 가치 있는 그래서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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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상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내보다 더 잘 아는 게르망트 씨는, 진정한 걸작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평범하지만 장엄한 진짜 그림으로 가득한 옛 처소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그의 대화에 더하는 추억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폰 대공은 왜 오말 공작 얘기를 할 때면 '내 아저씨'라고 부르는지 아그리장트 대공이 물어보자, 게르망트 씨는 "폰 대공의 삼촌인 뷔르템베르크 공작이 루이필리프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이라네"라고 대답했다. 나는 카르파초나 맴링이 그린 것과 유사한 성골함을, 마리 공주가 오빠의 결혼식에 아주 단순한 정원용 옷차림으로 나타나 그녀를 위해 시라퀴즈 대공에게 구혼하러 갔던 사절단을 물리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첫 장면부터, 몇몇 가문에 버금가는 귀족적인 장소 '팡테지 성'에서 그녀가 아들 뷔르템베르크 공작 (지금 내가 만찬을 같이하는 대공의 아저씨)을 출산한 마지막 장면까지 관조하고 있었다. 한 세대를 뛰어넘어 더 오래 존속하는 이런 장소들은 또 한 명 이상의 여러 역사적 인물과 결부된다. 특히 '팡테지 성'에는, 그 성을 건축한 바이로이트 총독 부인의 추억과, 남편이 물려받은 성 이름을 마음에 들어했다고 전해지는 조금은 '기이한 공주 (오를레앙 공작의 여동생)와 바이에른의 왕, 끝으로 폰 대공의 추억이 나란히 살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폰 대공의 주소였으므로 대공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게르망트 공작에게 거기로 편지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성을 상속받아 바그너 공연 동안만 또 다른 멋진 '기인'인 폴리냐크 대공에게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게르망트 씨가 자신이 아르파종 부인과 어떻게 친척이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토록 멀리, 또 그토록 간단히 셋 또는 다섯 조상들의 계보와, 혼인을 통해 마리루이즈 왕비나 콜베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경우, 역사적인 대사건은 그저 지나는 길에 영지 이름이나 여인의 세례명 속에 선택되어 (루이필리프와 마리아멜리의 손녀 이름도 그들이 프랑스 왕이자 왕비여서가 아니라 단지 조부모로서 유산을 남길 가능성에 따라 선택되는) 은폐되고 변질되고 축소된 형태로만 나타났다. (또 다른 이유를 든다면, 발자크 사전에도 가장 유명한 인물들은 '인간 희극' 전체와 가지는 관계 안에서만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나폴레옹은 라스티냐크보다 비중이 작으며, 그것도 생시뉴 아가씨들에게 말을 건다는 이유만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뚫린 창이 거의 없는 무거운 건축물인 귀족 사회는 빛이 거의 들어오지 못하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처럼 똑같이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도 없이, 그러나 똑같이 육중하고 맹목적인 힘을 보여 주면서 우리의 온 역사를 그 찌푸린 벽 안에 가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 기억의 공간은 서로의 관계에 의해 배열되고 구성되며 점점 더 많은 관계를 맺어 가는 이름들로 조금씩 매워지면서, 마치 단 하나의 붓질도 따로 놀지 않고 각각의 부분이 나머지 다른 부분에 존재 이유를 부여하는, 또 자기 차례가 되면 다른 부분으로부터 존재 이유를 부여받는 그런 완성된 미술품을 모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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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미학적 기쁨에 비하면 미약했다. 공작 부인의 손님들이 아그리장트 대공으로 불리든 시스트리아 대공으로 불리든 간에 파티에서 그들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름은 그들의 육체에서 영혼을 분리하는 효과를 자아내어 그 육체의 가면과 지적이지 못한 혹은 상투적인 지성의 가면이 그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변모시켰으므로, 결국 나는 이 집 현관의 신발 닦는 깔개에 발이 닿았을 때 믿었던 것처럼 이름이라는 마술적 세계의 문턱이 아닌 그 종착역에 상륙했던 것이다. 아그리장트 대공의 어머니가 모데나 공작의 손녀딸로 다마스 가문에 속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대공은 마치 불안정한 화학 합성물로부터 떨어져 나가듯 그를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얼굴과 말로부터 떨어져 나가면서, 한낱 작위에 지나지 않는 다마스와 모데나로 무한히 매력적인 조합을 만들어 냈다. 가각의 이름이 내가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던 다른 이름에 이끌려 자리를 이동하면서, 그것이 내 머릿속에 차지하던 불변의 장소, 습관으로 빛이 바랜 장소를 떠나, 모르트마르와 스튜아르와 부르봉 가문에 합쳐지면서, 그들과 더불어 보다 우아한 효과를 내며 갖가지 빛깔로 변하는 가지들을 그려 나갔다. 게르망트라는 이름마저 지금은 사라져 더욱더 열렬히 불타오르는 온갖 아름다운 이름들, 내가 이제 막 게르망트라는 이름이 거기 연결되었다는 걸 알게 된 이름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순전히 시적인 의미를 부여받았다. 기껏해야 도도한 줄기로부터 새싹이 나 부풀어 오른 각각의 가지 끝에서, 마치 앙리 4세의 부친이나 롱그빌 공작 부인처럼 현명한 왕 또는 저명한 공주의 얼굴로 그 의미가 피어남을 볼 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방 안에 있는 초대 손님들의 얼굴과는 다른 이 얼굴들은 어떤 물질적 경험이나 사회적 진부함의 잔존물로 빚어지지 않은 채, 아름다운 데생과 다채롭게 변하는 반사광 속에서 이름들과 동질적인 상태로 남았으며, 그 이름들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다른 빛깔로 게르망트네 족보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와, 반투명의 다채로운 빛깔이 서로 어긋나게 놓여 있는 싹들을 어떤 불투명한 이질적인 물질로도 방해하지 않으면서, 마치 예수님의 조상들을 그려넣은 옛 '이새의 채색 유리' 마냥 유리 나무의 양쪽에서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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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망트 부인 댁에서 나와 샤를뤼스 저택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일종의 흥분 상태에 사로잡혔지만, 이런 흥분은 인위적인 것이었으므로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르망트 부인도 그런 감정을 느꼈겠지만 아주 다른 방식이었으리라. 우리는 두 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몰두할 수 있다. 하나느 우리 자신으로부터 오는, 우리가 받은 심오한 인상으로부터 오는 힘이며, 다른 하나는 외부에서 오는 힘이다. 첫 번째 힘을 동반하는 것은 기쁨으로, 창조자의 삶에서 발산된다. 또 다른 힘은 외부 사람들을 동요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우리 안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즐거움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위적인 도취감을 느끼고 즐거움을 덧붙이지만, 이런 도취감은 금방 권태나 서글픔으로 바뀌곤 해서 그토록 많은 사교계 인사들의 얼굴이 울적해 보이며, 도 그토록 불안한 상태가 때로는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샤를뤼스 시 댁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나는 이 두 번째 흥분 상태에 사로잡혔으며, 이는 내가 지난날 다른 마차를 타고 느꼈던 개인적인 인상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다시 말해 콩브레의 페르시피에 의사의 이륜마차 안에서 마르탱빌 종탑이 석양빛에 그려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발베크의 빌파리지 부인의 사륜마차 안에서 나무로 뒤덮인 오솔길이 내게 떠올렸던 회상을 밝혀 보려고 했을 때와는 아주 달랐다. 그러나 이 세 번째 마차 안에서 내 정신이라는 눈앞에 놓인 것은, 게르망트 부인의 만찬에서 그토록 지루하게 느껴졌던 대화들, 이를테면 독일 황제나 보타 장군과 영국 군대에 관한 폰 대공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지금 막 나의 내적 입체경 안에 끼워 넣었는데,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닐 때, 사교계 인사의 영혼으로 우리 삶을 오로지 타인으로부터만 받으려고 할 때, 우리는 이 입체경을 통해 타인이 한 말과 행동을 뚜렷이 드러내 보인다. 술에 취한 사람이 자신의 시중을 든 카페 보이에 대해 다정함이 솟구쳐 오르는 걸 느끼듯, 빌헬름 2세를 잘 알며 그에 대해 매우 재치 있는 일화를 들려준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한 행운에 나는 감탄했다. (사실 그 순간에는 행운이라고 느끼지 않았지만.) 또 대공이 독일 억양으로 발해 준 보타 장군의 얘기를 떠올리며 크게 소리 내어 웃었는데, 마치 이 웃음이 나의 내적 존경심을 크게 해 주는 박수 소리인 양, 이야기의 희극적 면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듯 크게 웃어 댔다. 게르망트 부인의 의견 중 어리석게 보였던 것마저 (예를 들면 프란스 할스의 그림을 전차에서 내려다봐야 한다는 지적 같은) 이런 확대경을 통하면 경이로운 삶과 깊이를 가진 듯 보였다. 그리고 금방 사라진다 해도 이런 흥분이 아주 엉둥한 것마은 아니었다. 우리가 가장 경멸하던 사람이 우리가 사랑하는 소녀와 관계가 있어 우리를 그녀에게 소개해 줄 수 있고, 따라서 그 사람이 동시에 유용성과 기쁨을 - 그에게는 영원히 없을 거라고 믿었던 - 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어느 날 행복을 느끼듯이, 우리에게 언젠가 득이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없는 대화나 교우 관계는 없다. 전차에서 보아도 흥미로운 그림이라고 한 게르망트 부인의 말은 틀렸지만, 그래도 내게는 훗날 소중한 진실의 한 부분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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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에도 내가 게르망트 부인 집에서 들은 얘기들은 산사나무 꽃 앞에서나 마들렌을 맛보면서 느꼈던 것과는 매우 달랐으므로 나로서는 낯설기만 했다. 잠시 내 몸 안에 들어와 나를 오로지 육체적으로만 사로잡은 그 얘기들은 (개인적인 성질의 얘기가 아니라 사교적인 성질의) 나로부터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마차 안에서 나는 피티아 무녀처럼 몸을 떨었다. 나 자신이 폰 대공이나 게르망트 부인 같은 이가 되어 얘기할 수 있도록 다음 만찬을 기다렸다. 그동안 내 입술은 그 얘기들을 중얼거리면서 부들부들 떨렸고, 나는 현기증 나는 원심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채로 정신을 차리려고 있는 힘껏 애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마차 안에서 오랫동안 혼자서만 얘기하는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열기 어린 그런 초조함을 느끼면서 - 하기야 잠시 큰 소리로 외치며 대화 상대가 없음을 달래긴 했지만 - 나는 샤를뤼스 씨 집 문을 두드렸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게르망트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