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4권 / 소돔과 고모라 ____ 01. 게르망트 저택의 안마당

de.kim.528 2020. 5. 8. 16:51

 


 

그날 (게르망트 대공 부인 댁에서 파티가 있던 날) 공작 부부를 방문한 일에 대해서는 앞에서 얘기했지만, 훨씬 전부터 나는 그들의 귀가를 엿보았으며, 이렇게 엿보던 중 특히 샤를뤼스 씨에 관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고, 하지만 이 발견은 그 자체로 무척이나 중대한 것이어서 지금까지, 그에 적합한 자리와 지면이 확보될 때까지 이야기를 미루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브레키니 저택까지 올라가는 가파른 비탈길이, 프레쿠르 후작 소유의 마차 보관소 위로 분홍빛 종탑에 의해 이탈리아풍으로 즐겁게 장식된 모습이 내려다보이는 그 경이로운 전망대를 떠나 있었다. 공작 부부가 귀가 중이라 계단에서 살피는 쪽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높은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점심 식사가 끝난 후여서 조금은 아쉬움이 덜했다. 그 시각에는 아침처럼 그림 속 작은 인물이 된 브레키니와 트렘 저택의 하인들이 손에 먼지떨이를 들고 붉은 버팀벽 위에 경쾌하게 드러나 보이는 넓고 편편하게 펼쳐진 투명한 운모판 사이로 가파른 비탈길을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질학자의 관점에서 관조하지 못하는 나는 적어도 식물학자의 관점에서, 결혼을 시켜야 할 젊은이들을 밖에 내놓으려는 그런 집요함과 더불어 공작 부인이 안마당에 전시해놓은 작은 관목과 희귀 식물들을 계단 덧문 사이로 바라보면서, 올 것 같지 않은 곤충이 신의 섭리와 같은 우연으로 그 몸을 내맡긴 버려진 암술을 찾으러 오지 않을까 하고 묻고 있었다. 호기심으로 점점 대담해진 나는 아래층 창문까지 내려갔는데, 창문은 열려 있었으며 덧문 또한 반만 닫혀 있었다. 그 순간 떠날 준비를 하는 쥐피앵의 인기척이 내 귀에 똑똑히 들려왔으며, 하지만 쥐피앵은 블라인드 뒤에 숨은 나를 볼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대로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빌파리지 부인 댁에 가려고 안마당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샤를뤼스 씨에게 들킬까 겁이 나서 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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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다림은 곤충이 보다 쉽게 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술이 본능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수꽃에서처럼, 더 이상 수동적인 행동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곳에 있던 암꽃도 곤충이 오면 좀 더 용이하게 침투할 수 있도록 '암술대'를 애교 있게 휘면서, 마치 가식을 떠는 열정적인 아가씨처럼 곤충이 할 일을 반쯤은 눈에 띄지 않게 할 것이다. 식물계의 법칙 역시 점차 상위 법칙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곤충의 방문이, 다시 말해 다른 꽃의 씨앗을 가져다주는 일이 통상적으로 꽃의 수정에 필요하다면, 자가 수정, 즉 꽃 잧체에 의한 수정은, 마치 같은 친척 사이에서 반복되는 결혼처럼 퇴화나 불임을 야기한다. 이에 반해 곤충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접은 동일 종의 다음 세대에, 이전 세대가 알지 못하던 활력을 부여한다. 그렇지만 이런 비약적인 발전도 과도할 수 있고, 종도 지나치게 불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항독소가 우리를 병에서 보호하듯, 갑상선이 비만을 조절하듯, 패배가 자만심을 벌하고 피로가 쾌락을 벌하듯, 또 수면이 그 차례로 피로를 쉬게 하듯, 자가 수정이란 예외적인 행위가 시의적절하게 나타나서 나사를 조이거나 제동을 걸거나 하여 일탈한 꽃을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나의 성찰이 내가 나중에 묘사할 것과 같은 경향을 띠면서 이미 꽃의 명백한 술책으로부터 문학 작품의 모든 무의식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을 때, 샤를뤼스 씨가 후작 부인 댁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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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 햇빛 때문에 눈커풀을 떨군 샤를뤼스 씨의 얼굴에는 평소 활기찬 담소와 의지의 힘으로 유지되던 긴장이 완화되고, 인위적인 활기도 둔해졌다. 대리석처럼 창백한 그의 얼굴에서 코는 상당히 컸고, 섬세한 이목구비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변형시키는 어떤 다른 의미도 그의 의지적인 눈길로부터 받고 있지 않았다. 그저 게르망트 가문의 일원으로서, 팔라메드 15세로서 콩브레의 소성당에 조각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가족 전체에 걸친 보편적인 특징이 샤를뤼스 씨의 얼굴에 보다 정신적이고, 특히 부드러운 섬세함을 더했다. 빌파리지 부인 댁에서 나오는 순간, 내가 그의 얼굴에서 그토록 순진하게 펼쳐지는 걸 보았던 상냥함과 선량함이, 왜 평소에는 그렇게 격렬하고 불쾌한 기이함과 험담과 잔인함과 지나치게 예민한 오만함으로 변질되었는지, 또 인위적인 난폭함 아래 감춰져 있었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이 부신 듯 햇빛에 눈을 깜박거리며 거의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이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얼굴에서 뭔가 다정하고 무장 해제된 모습을 보자, 샤를뤼스 씨가 만일 지금 남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격분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성다움에 그토록 열중하고, 남성다움을 그렇게나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기 싫게도 여성화되었다고 여기는 이 남자를 보며 내가 떠올린 것은, 그의 이목구비나 표정과 미소가 그렇게도 일시적으로 그런 모습을 띠었으므로 내가 갑자기 떠올린 것은 바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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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의 시작부터 나의 부릅뜬 눈에는 하나의 혁명이, 마치 마술 지팡이에라도 닿은 듯한 그런 완전하고도 즉각적인 혁명이 샤를뤼스 씨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악덕은 (언어의 편의상 이렇게들 말하는), 마치 정령의 존재를 모르는 인간에게서 그 인간이 모르는 정령이 눈에 띄지 않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각자의 악덕은 우리를 동반하고 있다. 선함이나 교활함, 명성과 사교적 친분 관계는 그 자체로서는 드러나지 않으며 우리는 그것을 감춘 채 지니고 있다. 오디세우스도 처음 순간에는 아테나 여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신들은 즉각적으로 다른 신들에게, 비슷한 사람은 비슷한 사람에게 금방 인지되는 법이며, 이렇게 해서 샤를뤼스 씨 또한 쥐피앵에게 인지되었다. 지금가지 나는 샤를뤼스 씨 앞에서 임신한 여자 앞에 서 있는 어느 방심한 남자와도 같았다. 남자가 여인의 무거운 허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집요하게 "그런데 무슨 일이오?"라고 무례하게 물으면, 여인은 미소를 지으면서 "예, 요즘 몸이 좀 피로해서요." 라고 되풀이한다. 그러다 누군가가 그에게 "그녀는 배가 부르잖아." 라고 말하면, 갑자기 그 배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성이 눈을 뜬 것이다. 오류가 사라지면 또 하나의 의미가 다가온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권

소돔과 고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