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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2권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____ 17. 엘스티르의 아틀리에

 


 

나는 할머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엘스티르가 방파제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발베크에서도 가장 최근에 생긴 거리에 살고 있어 더 짜증이 났다. 한낮의 열기 탓에 '해변'의 길을 관통하는 전차를 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난 킴메르 족 왕국이자 마르크 왕의 나라이며 브로셀리앙드 숲이 위치했던 곳에 있다고 애써 생각하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그 싸구려 건축물의 사치스러운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마도 엘스티르의 빌라는 그런 건축물들 가운데서도 가장 보기 흉하게 화려한 건물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 집을 빌린 것은 발베크에 있는 빌라 가운데 유일하게 넓은 아틀리에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도시의 추함이 새겨진 주위를 통과하고 일단 아틀리에 안으로 들어선 뒤에는 더 이상 주춧돌의 초콜릿색 쇠시리에도 개의치 않게 되었다. 무척이나 행복한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내 주위에 있던 그 모든 습작품으로 인해 지금까지는 내가 현실의 총체적인 광경으로부터 분리하지 못했던 수많은 형태에 대해, 기쁨으로 가득한 시적 인식으로까지 나 자신을 높일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엘스티르의 아틀리에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종의 실험실 같아 보였고, 그곳에서 그는 모든 방향으로 놓인 다양안 직사각형 캔버스 위에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혼돈으로부터 꺼내어, 이쪽에는 모래사장 위에 라일락 빛 물거품을 터뜨리는 노기 띤 파도를, 저쪽에는 갑판 위에 팔꿈치를 괸 흰색 리넨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를 그려 넣었다. 젊은이의 윗도리와 부서지는 파도는, 이제는 아무도 입지 못하며 더 이상 아무것도 적시지 못한다는, 다시 말해 그것이 가졌다고 여겨지는 속성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새로운 품격을 획득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창조자는 손에 붓을 뒤고 지는 해의 형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방향에 블라인드가 쳐진 아틀리에 안은 제법 서늘했고, 대낮의 햇빛이 그 찬란하고도 일시적인 장식을 벽에 다 붙이는 곳을 제외하고는 어두웠다. 인동덩굴로 둘러싸인 작은 직사각형 창문만이 열려 있는 그곳은, 정원 화단을 지나면 곧바로 길가로 통했다. 그래서 아틀리에를 차지하는 공기 대부분은 덩어리진 부분에서는 어둡고 투명하고 농밀했으며, 빛이 스며든 틈새에서는 습하고 반짝거려, 마치 한 면을 이미 갈고닦아 윤이 나는 수정 덩어리마냥 여기저기 거울처럼 반짝거리며 무지갯빛으로 아롱졌다. 내 간청으로 엘스티르가 계속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한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또 다른 그림 앞에서 멈추면서 그 명암 사이를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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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 그의 아틀리에에 있는 그림들은 거의 이곳 발베크에서 그린 바다 풍경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각각의 그림이 가진 매력이 우리가 시에서 은유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일종의 재현된 사물의 변형에 있으며, 만물의 창조주인 신이 명명함으로써 사물을 창조했다면, 엘스티르는 사물로부터 그 이름을 제거하고 다른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사물을 재창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물을 지칭하는 이름들은 언제나 우리의 참된 인상과는 무관한 지성의 개념에 상응하며, 이런 개념과 관계 없는 것들은 모두 우리의 인상에서 제거하도록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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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마주하여 자신의 모든 지성의 개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엘스티르의 노력은 특히 경탄할 만했는데, 그는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자신을 무지 상태로 만들고,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 것이 아니므로 모든 것을 정직하게 다 망각하려고 하는, 정말 예외적인 교양의 지성인이었다. 내가 그에게 발베크 성당 앞에서 느꼈던 실망감에 대해 털어놓자 그는 "뭐라고?" 하며 말했다. "정문에 실망했다고? 그 정문은 사람들이 결코 읽은 적 없는, 종교적인 인물이 가장 아름답게 묘사된 성경책이라네. 성모 마리아와 그 삶을 얘기하는 모든 부조물은 중세가 성모 마리아의 영광을 위해 바쳤던 그 오랜 숭배와 찬미의 시(詩) 가운데서도 가장 다정하고 가장 영감이 풍부한 표현이네. 지극히 섬세한 정확함으로 신성한 텍스트를 번역했다는 점 외에도, 그 늙은 조각가가 부드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독창적인 발상을 했으며, 또 그의 생각이 얼마나 심오하고 얼마나 감미로운 시(詩)를 보여 주는지 자네는 알아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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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제게 이런 조언을 하더군요." 콩브레에서 르그랑댕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면서, 그에 대해 엘스티르의 의견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난 이렇게 말했다. "브르타뉴에 가지 말래요, 꿈을 꾸는 경향이 있는 정신에는 해롭다고요." "전혀 아닐세." 하고 그가 대답했다. "꿈을 꾸는 경향이 있는 정신인 경우, 꿈을 멀리하거나 꿈의 양을 제한해서는 안 되네. 정신을 꿈에서 다른 데로 돌리는 한 정신은 꿈을 알지 못할 걸세. 그리고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네는 수많은 외관의 희생물이 되겠지. 약간의 꿈이 위험하다면, 이를 낫게 하는 것은 꿈을 덜 꾸는 것이 아니라 더 꾸는, 아니 온통 꿈만 꾸는 것이라네. 꿈으로 고통 받지 않으려면, 꿈을 완전히 아는 게 중요하지. 꿈과 삶 사이에는 어떤 분리가 있으며, 분리란 것은 많은 경우 유용하므로, 어쨌든 이 분리를 미리 예방 차원에서라도 시도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 스스로도 묻고 있다네. 마치 몇몇 외과 의사가 나중에 맹장염에 걸릴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어린 시절에 맹장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듯이 말일세."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