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transcription/「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이제니 (3) 썸네일형 리스트형 몸소 아름다운 층위로 한 편의 시를 쓰고 있었다 이런 낱말을 가지고 있었다 목양실 감화원 유형지 부영사 금언집 김나지움 시가전차 고대연극 사랑이 끝나자 봄이 왔다 봄과 함께 고양이도 왔다 야옹 야옹 갸르릉 갸르릉 믿을 수 없게도 미국 고양이는 미우 미우라고 운다고 했다 고양이는 고양이만의 낱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자가 단 하나여도 고양이의 눈은 고양이의 눈 나의 눈은 나의 눈 고양이 곁에 바짝 다가앉아도 고양이는 고양이 나는 나 거실에서는 어머니가 성경을 읽고 있었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와 요한과 함께 어머니의 낱말은 성스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 희고 파리하고 서늘한 빛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김나지움의 빛 선적인 조망 붙박이 좌석 두꺼운 틀 깊은 창틀 걸러진 빛 작은 창유리 활짝 열리는 창 반쯤 가려진 정원* 빛이 잘 들지 않는.. 나선의 감각 - 음 들려온다. 하나의 음이. 하나의 목소리가. 태초 이전부터 흘러왔던 어떤 소리들이.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는 침묵으로 존재했던 어떤 형상들이. 너는 입을 연다. 숨을 내뱉듯 음을 내뱉는다. 성대를 지나는 공기의 압력을 느낀다. 하나의 모음이 흘러나온다. 모음은 공간과 공간 사이로 퍼져나간다. 위로 아래로 오른쪽 왼쪽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진동한다. 음은 비로소 몸을 갖는다. 부피를 갖고 질량을 갖는다. 소리는 길게 길게 이어진다. 길게 길게 이어지다 끊어진다. 끊어지다 다시 이어진다. 어떤 높이를 가진다. 어떤 깊이를 가진다. 너는 허공을 바라본다. 높은 곳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을 보듯이. 구석구석 음들이 차오른다. 차오르는 음폭에 비례해 공간이 확장된다. 너는 귀를 기울인다. 저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오.. 마지막은 왼손으로 우리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할수록 죄가 되는 날들. 시들 시간도 없이 재가 되는 꽃들. 말하지 않는 말 속에만 꽃이 피어 있었다. 천천히 죽어갈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울 수 있는 사각이 필요하다. 품이 큰 옷 속에 잠겨 숨이 막힐 때까지. 무한한 백지 위에서 말을 잃을 때까지. 한 줄 쓰면 한 줄 지워지는 말들. 지우고 오려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마지막은 왼손으로 쓴다. 왼손의 반대를 무릅쓰고 쓴다. 되풀이되는 날들이라 오해할 만한 날들 속에서. 너는 기억을 멈추기로 하였다. 우리의 입말은 모래 폭풍으로 사라져버린 작은 집 속에 있다. 갇혀 있는 것. 이를테면 숨겨온 마음 같은 것. 내가 나로 살기 원한다는 것. 너를 너로 바라보겠다는 것. 마지막은 왼손으로 쓴다. 왼손의 반대를 바라며 쓴다..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