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를 쓰고 있었다
이런 낱말을 가지고 있었다
목양실
감화원
유형지
부영사
금언집
김나지움
시가전차
고대연극
사랑이 끝나자 봄이 왔다
봄과 함께 고양이도 왔다
야옹 야옹
갸르릉 갸르릉
믿을 수 없게도 미국 고양이는
미우 미우라고 운다고 했다
고양이는 고양이만의 낱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자가 단 하나여도
고양이의 눈은 고양이의 눈
나의 눈은 나의 눈
고양이 곁에 바짝 다가앉아도
고양이는 고양이
나는 나
거실에서는 어머니가 성경을 읽고 있었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와 요한과 함께
어머니의 낱말은 성스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
희고 파리하고 서늘한 빛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김나지움의 빛
선적인 조망
붙박이 좌석
두꺼운 틀
깊은 창틀
걸러진 빛
작은 창유리
활짝 열리는 창
반쯤 가려진 정원*
빛이 잘 들지 않는 창가 좌석은 이런 낱말을 가지고 있었다
방 안 가득 먼지가 흐르고 있었다
먼지가 흐르듯 고양이도 흐르고 있었다
고양이가 흐르듯 나도 흐르고 있었다
탁자 밑에서 침대 밑에서
어둠 속을 파고드는 신실한 마음처럼
믿을 수 없게도 모두 함께 시를 쓰고 있었다
저마다의 낱말 속에서 저마다 아름답게 흐르고 있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 종이에서 저 종이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영원의 건축』에서.
이제니 시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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