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transcription (71) 썸네일형 리스트형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4. 귀로 49 /리스본을 떠나 베른으로 가지 않고 살라망카로. 그가 베른 역에 도착할 때면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아진다면 여기에 머물렀던 시간도 사라지는 걸까? _ 덧없음의 재. 조르지가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죽음에 대한 공포에 빠졌다고 말한 건 이미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아니,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건 '다른 시간'이었다. 완벽하게 다른 시간. 겨우 3년 전에 불과하다. 지극히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3년. 에스테파니아. 그때 조르지는 에스테파니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그를 위해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다고, 그도 자기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앉아 그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 얼마나 아름답고 유혹적인 이름인가! 그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3. 시도 _ 5 44 / 리스본에서 만난 사람들과 작별 인사. 코우딩뉴 노인의 집, 프라두의 가족 무덤, 멜로디의 집, 조르지의 약국을 사진에 담음. 그레고리우스는 오전 내내 자기가 제대로 작별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빠진 느낌이었는데, 이제 그게 뭐였는지 깨달았다. 그는 맞은편 사진 가게로 가서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산 다음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조르지가 문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렌즈로 끌어당겨 찍었지만, 대부분 너무 늦게 셔터를 누르는 바람에 필름 한 통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코우팅뉴 노인의 집이 있는 프라제레스 공동묘지 근처로 가서 담쟁이 넝쿨로 온통 뒤덮인, 무너질 듯한 그 집을 찍었다. 망원렌즈로 창문을 몇 번이나 끌어당겨보았지만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공동묘지로 ..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3. 시도 _ 4 38 /마리아 주앙의 집. 마리아 주앙과의 만남. 그레고리우스는 거의 한 시간 전부터 마리아 주앙의 집을 맴돌면서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마리아 주앙이 문을 열자 한순간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녀는 김이 나는 커피 잔을 한 손에 들고, 따뜻함을 느끼려는 듯 다른 손을 잔에 대고 있었다. 갈색의 맑은 시선은 무슨 일인지 살피는 기색이었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이 뒤를 돌아볼 정도로 화사한 미인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도 그랬으리라 생각됐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는,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이렇듯 완벽하게 확신과 자신감을 드러내는 여자를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저는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생애와 글에 대해 알아가는 중입니다." 아무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그..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3. 시도 _ 3 32 / 실우베이라의 집. 프라두의 아버지가 프라두에게 쓴 편지. _ 깨어 있는 의식과 수많은 재능을 타고난 아들을 두었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할 수 있겠니? 무능해 보이지 않으려면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아버지에게 일깨워준, 언변이 뛰어난 아들을? 방은 반짝이는 네 총명함으로 가득 찼다. 내가 그때 했던 생각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구나. 아마데우의 명석함에 비해 이 문장들은 얼마나 단순한가! 네가 나가고 난 뒤 너에 대한 자부심 대신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 이제부터 아들의 정신은 내 모든 약점을 사정없이 드러내는 날카로운 탐조등이 되겠구나. 그게 내가 너를 두려워하기 시작한 계기였던 것 같다. 그래, 난 널 두려워했다. 난 책을 읽는 너를 사랑했다. 널 아주 많이 사랑했어. 활활 타는 너의 독..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3. 시도 _ 2 27 /호텔. 프라두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 _ 오늘 아침 아버지의 운전사가 저를 역으로 데려다줄 때, 평소라면 매일 아침 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을 푹신한 자리에서 저를 갈기갈기 찢을 것만 같은 모순된 감정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이 감정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을 표현한다 함은, 그 일이 지닌 힘은 보존하고 두려움은 제거하는 것이리라.' 페소아가 쓴 글입니다. 내가 의사가 된 이유도 결국은 그게 아니었을까? 아빠 척추의 끔찍한 질병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대항하기 위해, 아빠가 침묵하며 견디어야 하는 고통에 충분히 동참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아드리아나와 리타를 아빠에게서 멀어지게 한 그 비난, 그래서 사실로 확인된 그 질책을 피하기 위해……. 아빠..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3. 시도 _ 1 24 / 베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리스본으로. 월요일 아침, 그레고리우스는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동틀 무렵에 잠이 깬 그는 지금 길을 잃고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잠에서 깨어난 다음 중립적인 각성 상태에서 한 생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먼저 생각이 들었고, 그다음에 의식이 깨어났다. 이 특이하고 투명한 각성은 그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_ 영원한 젊음. 젊은 시절 우리는 우리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산다. 죽을 운명이라는 인식은 종이로 만든 느슨한 끈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어 피부에 거의 닿지 않는다. 인생에서 이런 상황이 바뀔 때는? 이 끈이 우리를 점점 휘감아 오고 마지막에는 목을 조일 듯하는 건 언제인가? 절대 느슨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부드러우면서..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2. 만남 _ 3 20 / 파란 집. 아드리아나와의 두 번째 만남. "오빠는 쓰지 말았어야 해요. 아니, 쓸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 해요. 그건 그날 이후로 오빠의 핏줄에 서서히 흐르는 독과 같았어요. 글은 오빠를 파괴했어요. 오빠는 자기가 쓴 글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요. 정말 예전과는 달랐어요. 난 오빠가 자는 동안 서랍을 뒤져 글을 읽었어요.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그때부터는 내 마음속에도 독이 자랐으니까. 상처받은 자존심, 파괴된 신뢰라는 독……. 우리 두 사람 사이는 예전과 달라졌어요. 오빠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가차 없이 솔직했던지! 자기기만과의 싸움에 그렇게 사로잡혀 있다니! '사람은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어.' 늘 이렇게 말했어요. 그건 종교적인 고백과 비슷했어요..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2. 만남 _ 2 15 /신문사. 프라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조사. _"제가 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럼 도대체 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죠? 영원이라는 관점요? 그런 건 없습니다." _ 어떤 특정한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지 경박한 변덕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구분하나요? 아버지, 그렇게 하시기 전에 왜 저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적어도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라도 할 수 있도록 말씀을 하시지 그랬어요? 16 /프라두 아버지가 살던 집. 프라두의 둘째 여동생 멜로디와의 만남. 삶의 숨쉬는 집이었다. "마리아 주앙.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군요. 전혀 몰랐어요. 그러니까 오빠는 그때부터 이미 마리아 주앙을 사랑했던 것 같네요. 그 사랑은 멈춘 적이 없었어요. 오빠 인생에서 참 ..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