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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4권 / 소돔과 고모라 ____ 07. 해돋이

 


 

방에 혼자 남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너무나 높은 천장 때문에 불행했고, 스테르마리아 양에 대해 매우 다정한 감정을 느꼈으며, 해변에 멈춘 철새처럼 이동하던 알베르틴과 친구들의 모습을 엿보았으며, 엘리베이터 보이를 시켜 그녀를 데려오게 해서 그토록 냉담하게 소유했으며, 또 할머니의 선한 마음을 알고 다음으로 할머니의 죽음을 체험했던 바로 그 방이었다. 나는 바다의 첫 지맥(支脈)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열곤 했는데 (지금은 알베르틴이 우리의 키스하는 모습이 보일까 봐 닫게 하는), 이처럼 나는 나 자신의 변모를 사물의 동일성에 대조하면서 더 잘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듯 사물에 대해서도 익숙해지기 마련이어서 사물이 본래 갖고 있던 의미와 다른 의미를 떠올리고, 다음으로 사물이 모든 의미를 상실해서 그것이 둘러쌌던, 오늘날의 사건과는 아주 다른 사건들이나 동일한 천장과 동일한 유리 낀 책장 아래서 행해졌던 여러 다른 행동들을 떠올릴 때면, 그런 다양성 안에 내포된 우리 마음과 삶의 변화는 변함없는 배경의 영속성으로 인해 더욱 증대되고, 장소의 단일성으로 인해 더욱 견고한 모습을 띤다.

두세 번 나는 어느 한순간, 이 방과 책장이 놓인 세계, 또 그 안에서 알베르틴이 그토록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이 세계가, 어쩌면 내게는 유일한 현실인 지적인 세계이며, 또 내 슬픔은 뭔가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슬픔이며, 오직 광인만이 그 슬픔을 영속적이고 항구적인, 그리고 자신의 삶 속으로 연장되는 슬픔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현실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종이로 만든 둥근 테를 뚫고 통과하듯이 내 고통을 극복하고, 또 한 권의 소설을 읽고 나서 허구적인 여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하듯이 알베르틴의 행동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 위해서는 어쩌면 내 의지의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욱이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연인들은 그들에 대한 내 사랑과 같은 순간에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랑은 진실했다. 왜냐하면 나 혼자만을 위해 그 연인들을 보고 지키는 일을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했도, 또 어느 날인가 그들을 기다릴 때면 오열을 터뜨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연인들에겐 사랑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사랑을 일깨우고 절정에 이르게 하는 속성이 있었다. 그들을 만나고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들에게서 내 사랑과 흡사한 것, 내 사랑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나의 유일한 기쁨은 그들을 보는 것이었고, 나의 유일한 불안은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그 연인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미덕이 자연을 통해 그들에게 부수적으로 덧붙여졌으며, 또 이 미덕이, 이 유사 전류의 힘이 내 사랑을 자극하는 결과를, 다시 말하면 내 모든 행동을 인도하고 내 모든 괴로움을 유발하는 결과를 자아낸 것 같았다. 그러나 여인의 아름다움이나 지성, 선의는 이 모든 행동이나 괴로움과는 무관했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전류와 마찬가지로 나는 내 사랑에 송두리째 흔들렸고, 그래서 그 사랑을 체험하고 느꼈지만, 한 번도 사랑을 보거나 사유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여성이란 겉모습 아래 나타나는 이런 사랑에서 (게다가 통상적으로 사랑을 동반하지만 사랑을 구현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은 육체적 쾌락은 제외하고) 어둠 속의 여신을 대하듯 우리가 말을 거는 대상은, 바로 이런 여성을 부수적으로 동반하는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보이지 않는 힘의 관대함이며, 거기서 어떤 긍정적인 기쁨도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그 힘과의 접촉을 추구한다. 여인은 우리와 만나는 동안 이런 여신들과 접촉하게 해 주지만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석과 여행을 봉헌물로 약속했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찬미를 의미하는 상투적인 말들을, 혹은 무관심을 의미하는 그 반대되는 말들을 발언했다. 우리는 다음에 만날 약속을, 그녀가 따분해하지 않고 동의하는 만남의 약속을 얻기 위해 우리의 모든 힘을 사용했다. 그러나 만약 그녀가 그런 신비스러운 힘을 갖추지 않았다면, 그녀 자체만을 위해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가 있었을까? 그녀가 떠났을 때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말할 수 없으며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걸 깨닫고 있는데 말이다. 

시각이란 얼마나 속임수의 감각인가! 알베르틴의 몸처럼 사랑받는 몸조차 몇 미터, 아니 몇 센티미터만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 몸에 속한 영혼도 마찬가지다. 단지 무엇인가가 우리와 관계하여 영혼의 자리를 격렬하게 바꾸고, 그 영혼이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데, 그때 분리된 심장 고동 소리 덕분에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가 우리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 있음을 느낀다. 우리 몸속에, 하지만 조금은 표면에 가까운 지대에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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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막 떠오르려고 하는 태양의 빛이 주변의 사물을 변하게 하면서 한순간 그 빛에 따라 내 위치를 이동한 듯, 다시금 나의 고뇌를 보다 잔인하게 의식하도록 했다. 이처럼 아름답고도 고통스럽게 시작되는 아침을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제 곧 빛을 발할 풍경을, 전날까지만 해도 그곳에 가 보고 싶은 욕망이 나를 채웠으나 지금은 무관심하게만 느껴지는 이 모든 풍경을 생각하면서, 나는 오열을 참지 못했다. 그때 기계적으로 구현되는 봉헌의 몸짓 속에서, 또 아침마다 내 삶의 끝까지 내 모든 기쁨으로 치러야 하는 그 피의 희생을 상징하는 듯 보였던, 내 나날의 슬픔과 상처의 피로 새벽마다 장엄하게 거행되는 그 되풀이되는 몸짓 속에서, 태양의 황금빛 알은 마치 그것이 응결되는 순간 농도 변화에 따른 균형의 파괴로 내던져진 듯, 그림 속의 가시관처럼 불꽃에 휩싸인 채로 단번에 장막을 찢으면서 터져 나왔고, 우리가 그 장막 뒤로 조금 전부터 무대에 등장하기 위해 몸을 떨며 뛰어들 준비를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태양은, 이제 자신의 신비스럽고 응결된 붉은 장막을 빛의 물결 아래서 지워 버렸다. 나는 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 순간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문이 열렸고, 그러자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미 내가 본 적 있는, 하지만 잠을 자는 동안에만 본 적 있는 그런 환영 중의 하나인 할머니를 내 앞에서 보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꿈일 뿐이었단 말인가? 아! 슬프게도 나는 분명 깨어 있었다. "내 모습이 네 가련한 할머니와 비슷해 보였던 모양이구나?" 하고 어머니는 - 그것은 어머니였다. - 내 공포를 진정시키려는 듯, 한 번도 교태를 부린 적 없는 그런 소박한 자긍심에 빛나는 아름다운 미소와 더불어 할머니와의 닮은 모습을 고백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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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해돋이를 보면서 자기 어머니 생각에 쓸쓸히 미소 지었고, 내가 해돋이 장면을 관조하지 않는 걸 보고 섭섭해하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 광경의 이점을 놓치지 않도록 내게 창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어머니가 가리키는 발베크 해변과 해돋이 뒤로, 어머니의 눈에도 빠져나가지 않은 그런 절망적인 움직임으로 나는 몽주뱅의 방을 보고 있었다. 장빗빛 얼굴에 장난기 어린 코를 하고 커다란 암코양이처럼 웅크린 알베르틴이, 뱅퇴유 양의 여자 친구 자리를 차지하고 관능적인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래, 사람들이 우릴 본다면 더 잘됐지, 뭐. 내가 이 늙은 원숭이에게 침을 못 뱉을 줄 알아?" 라고 말하던 몽주뱅의 방을. 내가 창문 속에 펼쳐지는 광경 뒤에서 본 것은 바로 그 장면이었고, 창문 속 광경은 이 다른 장면 위에 반사광처럼 포개진 하나의 흐릿한 베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 장면은 사실 그림에 그려진 풍경처럼 거의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맞은편 파르빌 절벽의 돌출부에는, 우리가 고리 찾기 놀이를 하던 작은 숲이, 알베르틴과 함께 낮잠을 자러 갔다 낮의 끝자락에 해가 기우는 모습을 보면서 깨어났던 시각처럼, 그 잎으로 우거진 정경을 금빛 바니시로 물든 바다까지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었다. 여명의 빛이 뿌리는 자개 조각들로 가득 채워진 수면 위로 분홍, 파랑 헝겊 조각들이 아직 떠돌아다니는 밤안개의 혼란 속에, 몇몇 배들이 저녁에 돌아올 때처럼 그들의 돛과 앞쪽 돛대 끝을 노랗게 물들이는 그 기울어진 빛에 미소 지으면서 지나갔다. 우리 몸을 떨리게 하는 이 황량한 상상 속의 장면은 단순한 석양의 환기에 불과했지만, 실제 저녁처럼 내가 습관적으로 석양에 앞서 나타나는 것을 보아 온 그런 하루 시간의 연속에 근거하지 않았다. 이 풀려나오고 삽입되고 견고하지 못한 장면은, 그것이 삭제하거나 덮거나 감추는 데 이르지 못한 몽주뱅의 끔찍한 이미지보다 훨씬 견고하지 못한 이 장면은 추억과 꿈의 공허한 시적 이미지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권

소돔과 고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