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우리는 집에만 있지 않고 자주 산책을 나갔다. 가끔씩 옷을 입기 전에 스완 부인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크레프드신 실내복의 분홍, 하양 또는 아주 화려한 빛깔 소맷부리 밖으로 나온 그녀의 아름다운 손은, 그녀 눈 속에는 있으나 그녀 마음속에는 없는 그런 우수의 빛으로 피아노 위에 놓인 손가락을 더 길어 보이게 했다. 스완이 그토록 좋아하던 소악절이 포함된 뱅퇴유 소나타 일부를 그녀가 내게 연주해 준 것도 바로 이런 날들 가운데 하루였다. 그러나 약간 복잡한 음악을 처음 들을 때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나중에 이 소나타 연주를 두세 번 들었을 때, 나는 그 곡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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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는 그날까지 소나타의 어떤 부분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스완과 스완 부인이 뚜렷이 알아본 악절은 내 명료한 지각과 거리가 멀었다. 마치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만 대신 빈 허공만을 발견하게 되는 이름처럼, 그러나 이 허공으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후 우리가 그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 그렇게도 헛되이 찾던 이름의 음절은 단번에 스스로 떠오른다. 그리고 진정으로 드문 작품이란 우리가 즉시 기억하지 못하며, 뿐만 아니라 그런 작품들 가운데서도 내가 뱅퇴유 소나타를 들었을 때처럼, 우리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을 먼저 인지한다. 스완 부인이 가장 유명한 악절을 연주했으므로 (그래서 오랫동안 소나타를 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나는 이 작품에 나를 위해 남아 있는 건 거의 없다고 잘못 생각했다. (이 점에 있어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 앞에 섰을 때 이미 사진을 통해 돔 지붕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별다른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 또한 어리석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소나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을 때에도, 이를테면 거리감이나 안개 탓에 어렴풋한 부분밖에 들어오지 않는 역사 기념물처럼 내게는 소나타 전체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바로 여기서 시간 속에서 구현되는 다른 작품도 다 마차가지지만, 이런 작품의 인식과 관계된 우수가 연유한다. 소나타 안에 가장 깊숙이 감추어졌던 부분이 내게 드러나면서 내가 처음 알아보고 좋아했던 것이 습관에 의해 내 감성 영역 밖으로 끌려가면서 나로부터 빠져나가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나타가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난 한 번도 소나타를 와전히 소유할 수 없었다. 소나타에는 우리 삶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삶보다 덜 환멸스러운 이 위대한 걸작은 처음부터 작품이 가진 최상의 것을 주지는 않는다. 뱅퇴유 소나타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는 아름다움도 가장 빨리 싫증 나는 아름다움으로, 아마도 그런 아름다움이 우리가 이미 아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동일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아름다움이 멀어지면 그 구조가 너무도 새로워 우리 정신에 혼란을 야기하며, 그래서 우리가 식별하지도 못하고 손도 대 보지 못한 채 그대로 간직해 왔던 악절을 좋아하는 일만 남는다. 우리가 알아보지 못한 채 매일 그 앞을 스쳐 가던 악절, 그 유일한 아름다움의 힘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던 악절이 이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악절을 떠나는 것도 우리가 맨 마지막일 것이다. 그 악절을 좋아하는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으므로 다른 악절보다는 바로 그 악절을 더 오래 좋아할 것이기에, 그리고 다른 작품들보다 더 심오한 작품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란 - 이 '소나타'에 대해 내게 필요했던 시간처럼 - 일반 대중이 진정으로 새로운 걸작을 좋아할 수 있을 때까지 흘러가는 수십 년 혹은 수 세기의 축소판이자 일종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중의 몰이해를 피하려는 천재는, 어쩌면 동시대인들에게는 작품 이해에 필요한 거리가 부족하므로 후대를 위해 쓰인 작품은 후대에 의해서만 읽혀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마치 너무 가까운 시대의 그림이라 우리가 잘못 판단하는 몇몇 그림들처럼. 그러나 현실에서 잘못된 평가를 피하려는 모든 비겁한 노력은 헛된 짓이며 이런 평가는 피할 수 없다. 천재의 작품이 즉각적인 찬미를 자아내기 어려운 이유는 작품을 쓴 자가 예외적인 인물로서 그와 비슷한 인물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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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나타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완 부인이 연주하는 걸 들으며 황홀해했다. 그 연주는 그녀의 실내복처럼, 그 집 계단의 향기처럼, 그녀가 입은 망토처럼, 그녀의 국화처럼, 이성으로 재능을 분석할 수 있는 세계보다 무한히 높은 세계에서 개별적이고 신비로운 전체를 이루는 듯했다. "이 뱅퇴유 '소나타', 아름답지 않은가?" 하고 스완이 내게 말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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