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나는 스완 부인이 즐겨 사용하는 향수 냄새가 계단까지 풍기는, 하지만 질베르트의 삶에서 발산되는 그 특별하고도 고통스러운 매력이 더욱 짙게 풍기는 그 방을 알게 되었다. 무자비하기만 했던 문지기는 어느새 관대한 에우메니데스 여신이 되어 내가 올라가도 괜찮겠냐고 물으면 자비로운 손짓으로 챙 달린 모자를 들어 올리면서 나의 청원을 들어준다는 듯한 표정을 습관처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집 창문은, 밖에서 보면 나를 위해 마련되지 않은 보물들과 나 사이에 반짝이는 눈길, 내게는 스완 가 사람들의 눈길 자체인 양 보이는 거리감 있는 피상적인 눈길을 끼워 놓았고, 화창한 계절이 되어 질베르트와 함께 오후 내내 그녀 방에서 보낼 때면 환기를 하려고 나는 그 창문을 열어 놓았으며, 만일 그녀 어머니의 손님 접대일이라기도 하면 손님들이 도착하는 걸 구경하려고 그녀 옆에서 이런 창문에 몸을 기울이기도 했고, 마차에서 내린 손님들은 얼굴을 들어 나를 이 집 여주인의 조카들 중 하나로 여기고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질베르트의 땋은 머리가 내 뺨에 스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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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트와의 만남을 그토록 오랫동안 방해해 왔던 질베르트의 부모님은 - 그 옛날 베르사유 궁에서의 '왕'의 출현보다 더 놀랍고 더 기대되는, 스완부부와 마주칠 가능성이 끊임없이 감도는 그 어두컴컴한 응접실로 들어갈 때면, 난 보통 '성경에 나오는 촛대'처럼 일곱 가지가 달린 커다란 외투걸이에 부딪히고 난 후에 회색 코트 차림으로 나무 상자에 걸터앉아 있는 하인을 어둠 속에서 스완 부인으로 착각하고는 거듭 인사를 하곤 했는데 - 이제는 혹시 두 분 중 한 분이 마침 내가 도착한 순간 옆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화나는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코망 알레 부? (그들은 둘 다 t를 연음하지 않은 채 '코망 알레 부?'라고 발음했는데, 짐작하겠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연음하지 않고 발음하는 그 감미로운 연습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여기 온 걸 질베르트가 아나요? 그럼 이만 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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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이 다른 탓에 질베르트가 간식 시간에 초대한 친구들 중 몇 명은 다른 친구들이 도착할 때 떠나야 했는데, 계단에 이르자마자 나는 응접실로부터 새어 나오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이제 곧 내가 참석할 장엄한 의식이 불러일으킬 감동 속에 내가 미처 층계참에 이르기도 전에 아직도 나를 예전 삶과 연결해 주는 관계들로부터 느닷없이 단절시켰고, 더워지면 목도리를 벗어야겠다는 생각이나 너무 늦게 돌아가지 않게 시계를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 따위는 모두 잊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계단은 오랫동안 오데트의 이상이었다가 금방 싫증을 내게 될, 당시 앙리 2세 양식으로 지은 몇몇 집에 설치되었던 것처럼 전부 목재로 되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우리 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려갈 때는 승강기 사용 금지"라는 표시판이 붙어 있었으며, 내 눈엔 그 계단이 너무도 근사해 보여 나는 부모님께 스완 씨가 아주 먼 곳에서 가져온 옛 계단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오직 그런 정보만이 스완 씨 댁 계단의 품격에 대해 나 자신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존경심을 부모님께 품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의의 탁월한 솜씨가 어디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 앞에 그 명의가 코감기는 잘 못 고친다고는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내게는 관찰력이라는 게 전혀 없어 보통 눈앞에 놓인 물건의 이름이나 종류도 알지 못했으며, 단지 스완 가 사람들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물건들은 대단한 것이 틀림없으며, 부모님께 계단이 먼 곳에서 왔다는 사실과 그 예술적 가치에 대해 알린다 해도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믿었던 아버지가 내 말을 중단시키며 "나도 그런 집들을 잘 안단다. 그런 집 가운데 한 집을 본 적이 있는데 모두가 비슷비슷하더구나. 단지 스완은 여러 층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 집들은 베를리에가 건축한 거란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난 그만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아버지는 덧붙이시길, 당신도 그런 집 가운데 한 채를 빌리고 싶었지만 편하지 않은 듯 보였고, 또 현관이 어두워 포기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내 정신이 스완 가의 명성과 내 행복을 위해 필요한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느꼈고, 방금 내가 들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명령에 따라 스완 가의 아파트가 우리도 거처할 수 있는 여느 아파트와 똑같다는 불경한 생각을, 마치 동일한 신자가 르낭의 「예수의 생애」에 대해 그러듯이 영원히 떨쳐 버렸다.
그렇지만 이런 간식 모임이 있는 날이면 난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올라가면서 이미 내 생각이나 기억은 떨쳐 버린 채로 가장 저속한 반사작용의 꼭두각시가 되어 스완 부인의 향기가 풍기는 지대에 이르곤 했다. 그럴 때면 벌써 프티 푸르가 담긴 접시와 스완 가의 독특한 예절이 요구하는 작은 회색 물결무늬 냅킨에 둘러싸인 초콜릿 케이크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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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닫혔던 길이 모든 예상을 뒤엎고 내 앞에 열리면서 이 요정이 사는 처소를 내가 존경과 환희에 떨며 탐색하기 시작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질베르트의 친구 자격으로서였다. 나를 맞이한 왕국은 스완과 스완 부인이 초자연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보다 신비로운 왕국 안에 가두어져, 그들은 악수를 한 후 응접실을 통과하고 나서 동시에,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자기들의 왕국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나는 곧 이런 지성소의 중심부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를테면 질베르트가 집에 없고, 스완 씨나 스완 부인만 집에 있을 때가 있었다. 그들은 누가 초인종을 울렸는지를 묻고 나인 줄 알면 잠시 자기들 옆에 오라고 청했으며 내가 딸에 대해 이런저런 일이나 이런저런 방향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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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트 친구로서 그녀에게 탁월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나의 새로운 입장은, 흡사 항상 최고로 꼽히는 중학교에서 어떵 왕의 아들을 친구로 삼게 되어 그 우연 덕에 내가 사사롭게 왕궁 출입도 하고 알현실에서 면담을 하는 것과도 같은 은총을 누리게 했다. 스완은 끝없는 호의로 그의 명예로운 업무에도 바쁘지 않다는 듯이, 나를 자신의 서재로 데리고 가서는 내가 감동해서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에 대해 한 시간이나 더듬거리며, 짧고 두서없는 용기와 열정의 폭발로 가끔 중단되는 그런 수줍은 침묵으로 대답하게 했다. 스완은 내가 흥미 있을만하다고 생각되는 미술품과 책 들을 보여 주었는데, 나는 그 작품들이 루브르 박물관이나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것보다 무한히 아름답다는 걸 미리 확신했지만, 그 작품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그런 순간에 스완의 집사가 내 시계나 넥타이핀, 장화를 달라고 하거나, 자기를 내 유산 상속인으로 인정하는 증명서에 서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해도 난 기쁘게 수락했을 것이다. 속어로 가장 멋지게 표현해 본다면, 나는 "내가 뭘 하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이 속어는 가장 아름다운 서사시처럼 작자 미상이지만,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볼프의 학설과는 달리 분명 한 저자가 생각해 낸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매해 만나는 이런 창의적이고 겸손한 이들은 '얼굴을 보고 이름을 생각해 낸다.'와 같은 의외의 발견을 했으면서도 정작 그들의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방문이 길어졌을 때, 이 마법의 저택에서 머무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았으며 그 어떤 행복한 결말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하지만 내 실망은 스완 씨가 보여 준 걸작의 부족함이나 내 방심한 시선을 그 걸작에 고정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스완 씨 서재에 있는 물건들을 기적처럼 여기게 된 것은 물건에 내재하는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오래전부터 그의 서재에 배치했던 그리고 아직도 그곳에 스며 있는 뭔가 특별하고도 서글픈, 관능적인 느낌이 그 물건들에 - 실제로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물건일 수도 있는 -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완 부인의 친구들인 가장 뛰어난 예술가들의 손으로 조각되거나 그려진 수많은 거울과 은 머리빗,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당 풍 제단들도 스완 부인이 나를 자기 방에서 잠시 접대해 주었을 때 내 마음속에 일어났던 내 부적격함에 대한 감정과 그녀의 왕족 같은 관대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 방에서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세 여인, 즉 스완 부인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하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부인을 위해 그 경이로운 화장을 준비했고, 짧은 바지를 입은 하인이 부인께서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신다고 명령을 전해 오면, 나는 그녀의 드레스 룸으로부터 향기로운 냄새가 끊임없이 발산되어 그 소중한 향유가 멀리까지 퍼지는 구불구불한 복도를 따라 그곳에 가곤 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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