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완 부인이 점심 식사 전에 한 시간 동안 외출을 하며, 불로뉴 숲 대로나 에투알 광장 근처 그리고 사람들이 이름만 아는 부자들을 구경하려고 모여들기 때문에 당시 '가난뱅이 클럽'이라고 불리던 장소 근처로 몇 걸음 산책 나간다는 걸 알았으므로, 부모님으로부터 일요일에는 - 주중 다른 날 그 시각에는 일이 있었다. - 부모님보다 늦은 1시 15분에 점심을 먹기로 하고 그 전에 한 바퀴 돌고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질베르트가 시골 여자 친구 집에 가 있어서 이 5월 동안 일요일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난 12시쯤 개선문에 도착했다. 거리 입구에서 망을 보며, 겨우 몇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스완 부인이 집에서 나오는 작은 길모퉁이를 지켜보았다. 이미 많은 산책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가는 시각이어서 남은 사람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대부분 멋쟁이 신사들이었다. 갑자기 산책로 모랫길 위로 가장 아름다운 꽃, 정오에만 피는 꽃처럼 화려한 스완 부인이 뒤늦게 천천히 나타나 그녀 주위에 언제나 다른 옷차림의 꽃을 피웠는데, 특히 그녀의 연보랏빛 옷차림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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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둘러싼 신하들 탓에 행인들의 모습은 보지도 못하는 스완 부인은 지나치게 늦은 시각에 나타나 그녀가 그렇게도 천천히 아침 나절을 보낸, 또 곧 점심 식사를 위해 돌아가야 할 집을 연상시켰다. 자기 집 정원에서 좁은 보폭으로 산책하는 것과도 흡사한 그 고요하고도 한가로운 산책은 집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려주면서 그녀 주위에 집 안의 상쾌한 그늘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때문에 오히려 그녀 모습은 내게 바깥 공기와 따뜻함에 대한 감각을 더 많이 불러일으켰다. 스완 부인이 성당 전례와 의식에 깊이 정통하며 그녀 옷차림도 이런 계절과 시간에 필연적이고 독특한 관계로 연결되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내 눈에는 정원의 꽃과 숲의 꽃보다 그녀의 부드러운 밀짚모자에 달린 꽃이나 드레스의 작은 리본이 더 자연스럽게 5월이라는 계절에서 태어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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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부인이 불로뉴 숲 대로를 마치 자기에게 속한 정원 오솔길을 걷듯이 산책한다는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심어준 것은 - 그녀의 '푸팅(footing)' 습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 그녀가 그곳까지 걸어서 왔고 마차도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인데, 5월이 되면 사람들은 파리에서 가장 공을 들인 마구와 가장 단정한 제복을 입은 마부가 모는 여덟 개의 스프링이 달린 커다란 무개 사륜마차에 앉아 따뜻한 야외 공기를 즐기며 흡사 여신인 양 나른하고도 위풍당당하게 지나가는 그녀 모습을 보는 데 익숙했다. 스완 부인이 걷는 모습은, 더욱이 더위 때문에 느리게 걷는 모습은 어느 호기심 많은 시선에 굴복하거나, 예의범절 규칙을 우아하게 위반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흡사 축하 공연이 벌어지는 동안 왕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갑자기 칸막이 좌석에서 튀어나와 잠시 관객들과 섞이려고 휴게실을 찾아가도 놀란 수행원이 존경심에서 한 마디 비난도 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처럼 스완 부인과 군중 사이에서 군중은 모든 장벽 중에서도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일종의 부의 장벽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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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감각에 대한 기억의 상대적 수명은 평균 수명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기억보다 훨씬 더 생명이 길었으므로, 오래전 질베르트로 인한 슬픔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5월이 되어 낮 12시 15분에서 1시 사이 시각을 어느 해시계 눈금판에서 읽으려고 할 때면, 마치 등나무 넝쿨의 그늘과도 같은 스완 부인의 파라솔 아래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회상하는 기쁨은 그 슬픔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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