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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2권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____ 20. 알베르틴의 방

 


나는 알베르틴이 예약한, 골짜기 쪽으로 면한 방에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벨을 눌렀다. 승강기 의자에 앉는 지극히 사소한 동작마저도 내 마음과 직접 관계가 있었으므로 감미롭게 느껴졌다. 승강기를 들어 올리는 줄이나, 걸어서 올라가는 몇 개의 계단도 내게는 내 기쁨이 물화된 기구나 계단으로만 보였다. 복도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면 그 장밋빛 몸이라는 소중한 실체가 갇힌 방에 이를 수 있었고, 뭔가 감미로운 행위가 벌어질 그 방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숙박객들에게는 다른 모든 방들과 비슷해 보이겠지만, 방의 물건들을 집요하게 침묵시키는 중인,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신중한 친구, 침범할 수 없는 쾌락의 수탁인으로 만드는 그런 영속성을, 그런 존재의 모습을 띠게 되리라. 층계참에서 알베르틴의 방으로 가는 몇 걸음을,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는 그 몇 걸음을, 나는 마치 새로운 원소 속으로 잠겨 들듯이, 마치 앞으로 나아가면서 천천히 행복을 옮기듯이, 전능이라는 미지의 감정과 동시에 언제나 내 것이었던 유산을 드디어 받으러 가는 듯한 감정으로, 지극히 기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내가 의심했던 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명백했다. 나는 기뻐서 날뛰다 하마터면 도중에 만난 프랑수아즈를 넘어뜨릴 뻔했다.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알베르틴의 방으로 달려갔다. 침대에 누운 알베르틴을 보았다. 목을 드러낸 하얀 슬립이 얼굴 비율을 바꾸어, 침대 위치나 감기, 식사로 충혈된 얼굴을 더욱 분홍빛으로 보이게 했다. 몇 시간 전 방파제에서는 내 옆에 있던 얼굴 빛깔을 떠올리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제 드디어 그 맛을 음미하려 하고 있었다. 그녀 뺨에는 내 마음에 들고자 완전히 풀어 놓은 길게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 한 가닥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녀 옆 창문에서 달빛이 골짜기를 환히 비추었다. 알베르틴의 드러난 목과 분홍빛 뺨이 날 얼마나 도취하게 만들었는지, 다시 말해 이 세상 현실을 더 이상 자연이 아닌 억제하기 힘든 관능의 분출로 이동하게 했는지, 이 모습은 내 존재 안에서 흐르던 그 파괴할 수 없는 광대한 삶과, 이에 비해 너무나 연약하기만 한 우주의 삶 사이의 균형을 깨뜨렸다. 창문을 통해 골짜기 옆 바다, 멘빌 앞 절벽의 볼록한 젖가슴, 달이 아직 한가운데 솟아 있지 않은 하늘, 이 모든 것이 내 동공에는 새털보다 더 가볍게 들릴 듯 보였고, 나는 동공이 눈꺼풀 사이로 팽창하고 단단해져서는 수많은 무거운 짐, 세계의 모든 산들을 그 섬세한 표면 위로 들어 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동공은 수평선의 넓은 지대로도 충분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자연이 내게 가져다줄 수 있는 어떤 생명도 초라해 보였으며, 내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그 거대한 열망에 비하면 바다의 숨결도 아주 짧게만 느껴졌다. 나는 알베르틴에게 입을 맞추려고 몸을 기울였다. 죽음이 지금 들이닥친다 한들 별 상관이 없었으며, 아니, 차라리 죽음이 내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삶이 내 밖이 아닌 내 안에 있었으니까. 만약 한 철학자가 어느 날인가 비록 먼 훗날이라 할지라도 내가 죽을 것이며 자연의 영원한 힘은 나보다 오래 살아남아 이런 자연의 힘 아래에서 나란 존재는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해도 나는 아마 연민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으리라. 내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이 둥글고 볼록한 절벽이, 이 바다가, 이 달빛이, 이 하늘이 존재한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어떻게 세계가 나보다 더 오래 지속된단 말인가? 내가 세계 속에서 사멸되지 않고, 이 세계가 내 안에 담겨 있으며, 또 세계가 나를 채워 주기는커녕 내 안에서 다른 수많은 보물을 쌓아 놓을 빈자리를 느끼면서 하늘과 바다와 절벽을 한구석으로 경멸하듯 내던지고 있는데? "멈춰요, 멈추지 않으면 초인종을 누르겠어요." 하고 알베르틴이 키스하려고 덮치는 나를 보자 외쳤다. 그러나 나는 한 소녀가 젊은 남자를 은밀히 오게 하면서 자기 아주머니가 알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일이 아무 짓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며, 기회를 이용할 줄 아는 대담한 자만이 성공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흥분 상태에서 본 알베르틴의 동그란 얼굴은 야등에 비친 듯 내면의 불길로 뚜렷이 부각되면서, 마치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지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빙빙 돌아가는 소용돌이에 휩싸인 미켈란젤로의 얼굴들처럼 활활 타오르는 천체의 회전을 모방하면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드디어 그 미지의 분홍빛 과일이 지닌 향기와 맛을 음미하고자 했다. 다급하고도 길게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알베르틴이 온 힘을 다해 초인종을 누른 것이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