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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3권 / 게르망트 쪽 ____ 09. 알베르틴과의 재회, 게르망트 부인의 초대

 


01.

알베르틴과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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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어느 가을 일요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막 다시 태어난 듯, 내 앞에는 삶이 온전한 상태로 놓여 있었다. 따뜻한 날이 며칠 계속된 후 아침 나절의 차가운 안개가 정오가 되서야 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세상과 우리를 다시 창조할 수 있다. 예전에 바람 소리가 굴뚝에서 윙윙거렸을 때, 나는 바람이 벽난로 공기 조절용 철판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C단조 교향곡이 시작되는 저 유명한 현악기의 활 소리처럼 나를 신비로운 운명으로 이끄는 거역할 수 없는 부름인 양 생각되어, 감동 속에서 그 소리를 듣곤 했다. 자연의 모든 급격한 변화는 사물의 새로운 존재 방식에 우리 욕망을 조화롭게 적응시키면서 우리 마음에도 유사한 변화를 제공한다. 안개는 잠에서 이제 막 깨어난 나를 화창한 날씨마냥 원심적인 존재로 만드는 대신, 다른 여인과 벽난로와 침대를 나누기 열망하는 은둔의 인간, 이 다른 세계에서 칩거하는 하와를 찾아 나서는 추위에 민감한 아담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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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갑자기, 초인종 소리도 울리지 않았는데, 프랑수아즈가 문을 열고 알베르틴을 방 안으로 안내했다.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들어오는 통통한 알베르틴의 충만한 몸에는 내가 한 번도 돌아가 보지 못했던 발베크에서의 나날들이 담겨, 내가 그날들을 계속해서 살도록, 그날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도록 준비된 듯 보였다. 관계가 변한 상태에서 - 아무리 하찮은 관계라도 - 재회를 한다는 것은 마치 다른 두 시대가 만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만남을 위해 반드시 옛 애인이 친구로 찾아올 필요는 없으며, 우리가 어떤 삶에서 그날그날 알던 사람이 - 비록 그런 삶을 살지 않은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알베르틴의 웃고 질문하고 어색해하는 각각의 얼굴에서, 나는 "빌파리지 부인은요? 또 댄스 선생은요? 과제 가게 주인은?"이라는 질문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앉았을 때, 그 등은 "저런! 여긴 낭떠러지가 없네요. 발베크에서처럼 당신 옆에 앉아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시간의 거울을 보여 주는 마법사 같았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지금은 자주 보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지극히 내밀한 관계로 함께 살았던 사람과도 흡사했다. 그러나 알베르틴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물론 발베크에서도 나는 우리의 일상적 만남에서 그녀가 어쩌면 그렇게 변하는지 놀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 윤곽을 적시던 장밋빛 안개가 걷히면서 얼굴이 조각상처럼 튀어나왔다. 그녀 얼굴은 달랐다. 아니, 차라리 드디어 얼굴을 가졌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몸도 전보다 성숙했다. 그녀를 감쌌던 껍질에는, 또 발베크에서 미래의 형체가 거의 그려져 있지 않던 표면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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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를 사로잡은 감정이 발베크에 대한 욕망이었는지, 아니면 그녀에 대한 욕망이었는지 난 알지 못하며, 어쩌면 그녀에 대한 욕망 자체도 발베크를 소유하려는 나태하고 비겁하며 불완전한 형태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마치 어떤 사물을 물질적으로 소유하거나 한 도시에 거처를 정하는 일이 그 사물에 대한 정신적인 소유에 다를 바 없다는 듯, 더욱이 그녀가 내 상상력으로 인해 흔들리면서 바다 수평선 앞에 있지 않고 내 곁에 부동 자세로 앉을 때면, 그녀는 자주 내게, 꽃잎의 결점을 보지 않으려고 또 바닷가에서 향기를 들이마시고 있다고 믿기 위해 눈을 감고 싶어지는, 그런 초라한 장미꽃처럼 보였다.

 


02. 

게르망트 부인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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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 못하는 친구들에 대한 추억, 어쩌면 잠시 후에 다른 집 저녁 파티에서 다시 만나게 될 친구들 생각으로 가득한 게르망트 부인이 내가 있는 살롱을 지나가다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부인을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토록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부인에게 완전히 무관심한 상태여서 그저 상냥하게만 대하려고 하는 나를 보았다. 부인은 방향을 바꾸어 내 쪽으로 왔고, 그날 저녁 오페라좌에서 보냈던 것과 같은 미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사랑을 받는 불편한 감정에도 지워지지 않는 미소를 내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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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전만 해도 누군가가 와서 게르망트 부인이 내게 그녀를 방문해 달라고, 더욱이 저녁 식사에 와 달라고 청한다는 말을 전했다면 나는 너무도 놀랐을 것이다. 게르망트네 살롱이 내가 그 이름에서 추출했던 특별함을 더 이상 줄 수 없음을 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소설 속 묘사나 꿈속에서 본 이미지와 같은 종류의 실존을 이 살롱에 부여하면서 이 살롱이 다른 살롱과 유사하다고 확신할 때조차도, 나는 이 살롱을 뭔가 아주 다른 것으로 상상했기 때문이다. 나와 살롱 사이에는 현실이 끝나는 분리선이 놓여 있었다. 게르망트 댁에서의 저녁 식사는 마치 오랫동안 욕망해 오던 여행을, 머릿속의 욕망을 내 눈앞에 지나가게 하여 꿈과 친해지는 여행을 시도하는 것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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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알베르틴과 함께한 오후 외출과 모레 게르망트 부인 댁에서 있을 식사, 질베르트의 편지에 답장해야 하는 일 등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세 여인의 일을 생각했고, 그러자 우리의 사회생활이란 것이 예술가의 아틀리에마냥 여기저기 버린 스케치로, 어느 순간 우리의 커다란 사랑에 대한 욕망을 고정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리지만 결국은 내팽개친 스케치로 가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스케치들이 너무 오래되지 않았다면 다시 그것으로 돌아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어쩌면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작품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게르망트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