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할머니는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자신의 건강을 한탄해 오셨다. 우리는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우리가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의 존재에 묶여 있으며, 어떤 심연이 우리를 그 존재로부터 갈라놓아 그 존재는 우리를 알지 못하고, 우리도 그 존재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이 존재가 바로 우리 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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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외출하기에는 그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였다. 여기저기 이동하는 태양은 단단한 발코니를 부수고 부드러운 모슬린 조각을 끼워 넣어,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다듬은 돌에 따뜻한 표면과 흐릿한 금빛 후광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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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어머니가 곁에 있겠다는 것도 완강히 거절하고 혼자서 옷을 입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으며, 또 나는 할머니가 건강하시다는 걸 알았으므로,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은 무슨 일에나 부모님을 항상 뒷전에 두는 그런 이상한 무관심과 더불어 내가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으며, 또 빌다브레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는 것도 아실 텐데 이토록 늑장을 부려 날 지각하게 만들다니 할머니가 정말 이기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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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걸 보고 할머니가 늦을까 봐 무척이나 서둘렀음을 알아차렸다. 샹젤리제의 가브리엘 거리 입구에 이르러 합승 마차에서 내렸을 때, 나는 할머니가 내게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서서는, 언젠가 프랑수아즈를 기다렸던 초록색 철책이 쳐진 작은 옛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 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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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에는, 온갖 섬세함과 인용에 대한 취향, 고전 작품에 대한 기억이 평소에 할머니가 가지셨던 것보다 더 많이 들어 있었는데, 마치 할머니가 이 모든 걸 본인이 온전하게 소유했음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구절들은 내가 실제로 들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들었다고 짐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구역질이 날까 두려워한다는 설명만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만큼 할머니는 그토록 투덜거리는 목소리로 이를 꽉 물고 그 구절들을 발음했으니까.
"자, 가요." 하고 나는 할머니의 불편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려고 조금은 경쾌하게 말했다. "좀 구역질이 나시는 것 같으니 원하시면 그냥 돌아가요. 소화가 되지 않는 할머니를 모시고 샹젤리제를 산책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난 네 친구들 때문에 감히 그런 제안을 못 했단다." 하고 할머니가 대답하셨다. "불쌍한 아이! 하지만 네가 원하니 그 편이 더 현명하겠지."
나는 할머니가 자신이 그 말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아차릴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 하고 나는 갑자기 말했다. "자꾸 힘들게 말하지 마세요. 구역질 나는데, 바보 같은 짓이에요. 집에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가만히 계세요."
할머니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내가 방금 눈치챘다는 걸 알고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고 깨달으신 모양이었다. 조금 전에 가벼운 마비가 왔었다는 것을.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게르망트 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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