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루에게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할 레스토랑이 (돈을 낭비하는 젊은 귀족의 삶에서 레스토랑은 아랍 콩트에 나오는 옷감 상자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메가 발베크에서의 한 철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 책임자로 일할 것이라고 내게 알려 주었던 바로 그 레스토랑이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그토록 여행을 꿈꾸면서도 거의 하지 못했던 내게, 발베크의 추억에 속한다기보다는 발베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피로와 강의 때문에 내가 파리에 남아 있어야 할 때도, 에메는 매해 발베크에 가서 7월의 기나긴 오후 동안 저녁 식사 하러 오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해가 바닷속으로 내려가 잠드는 모습을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는데, 해가 사라진 후 유리창 뒤로 푸르스름한 배들의 움직이지 않는 측면이 마치 유리 상자 안에 든, 밤의 이국적인 나비처럼 보였으리라. 발베크라는 강력한 자석과 접촉하다보니 그 자신도 자기를 띠게 된 이 식당 책임자가 이번에는 그 차례로 내게 자석이 되었다. 나는 그와 담소를 나누면서 발베크에 가기 전에 미리 발베크와 소통하고, 이곳 파리에 있는 채로 뭔가 여행의 매력을 실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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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루가 그의 애인을 동반하고 나타났다. 그러자 그에게서 사랑 그 자체이며 삶의 온갖 달콤한 가능성인 여인이, 그 인격이 신비스럽게도 '성막'에 갇힌 듯 육체 속에 갇혀 내 친구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작업하게 하는 대상이자 그가 결코 알 수 없다고 느끼는 여인이, 그 시선과 육체의 베일 뒤에서 그녀의 실체가 무엇인지 줄곧 묻게 하던 여인이, '라셸, 주님께서'임을 나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몇 해 전 포주에게 - 이런 세계에 있는 여인들은 그럴 의사만 있으면 금방 변신하는 법이므로 -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럼 내일 저녁 만나요. 누군가에게 제가 필요하다면, 절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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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상상 속에서 여인을 처음 알게 되는 경우, 나는 인간의 상상력이 그 여인과 같은 작은 얼굴 조각 뒤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집어넣을 수 있는지 깨달았다. 또 반대로 수많은 몽상의 대상이던 사람도 그 몽상과 상반된 방식으로 가장 하찮은 사실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에는 얼마나 초라하고 온갖 가치가 제거된 물질적 요소로 분해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창가에서 20프랑에 제공되었을 때는 내게 20프랑 가치밖에 없어 보이던, 단지 20프랑을 벌기 원하는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던 여자를, 만일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미지의 존재로, 포착하기도 간직하기도 힘든 존재로 상상하기 시작만 하면, 그 존재는 100만 프랑 이상으로, 아니 가족이나 온갖 부러운 지위보다도 훨씬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마도 생루와 나는 똑같이 가느다랗고 좁은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소통할 수 없는 상반된 두 길을 통해 그 얼굴에 이르렀고, 그래서 결코 같은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 시선과 미소, 입술 움직임이 담긴 이 얼굴을 나는 외부에서, 단돈 20프랑만 주면 원하는 건 뭐든지 하는 그런 여자의 얼굴로 알았다. 그러므로 그녀의 시선과 미소와 입술 움직임은 개별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단지 일반적인 행위만을 의미하는 듯 보였으며, 그런 행위 아래서 한 인간을 찾으려는 호기심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내게 출발점에서 제공되었던 그 허락하는 얼굴은 로베르에게는 수많은 기대와 회의와 의혹과 몽상을 통해 나아가던 결승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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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눈길 정말 재미있지 않나요? 이해하시겠어요? 저 사람이 정말로 뭘 생각하는지 알고, 가끔씩 그의 시중을 받으며, 여행할 때 데리고 다닐 수 있다면 즐거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뿐이에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모두 사랑해야 한다면, 사실 꽤 '끔찍할' 거예요. 로베르는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건 다 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건데, 로베르는 마음을 편하게 가져도 좋으련만." 그녀는 여전히 에메를 바라보았다. "저기 저 사람의 검은 눈동자를 좀 보세요. 전 그 뒤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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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심 식사를 잘 하지 못했고 기분도 좋지 않아서 식당에 오기 전에 만난 르그랑댕의 말이 이 문제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에도, 이 봄날 첫 오후를 레스토랑의 작은 방에서 시작하여 극장 무대 뒤에서 끝내리라고 생각하자 후회가 밀려들었따. 라셸은 늦지 않았는지 시계를 쳐다보며 내게 샴페인을 주고 그녀가 피우는 동양 담배 한 개비를 건넸으며, 또 자신의 코르사주에서 장미 한 송이도 빼내 주었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까지 후회할 필요는 없어. 젊은 여인 곁에서 보낸 이 시간들이 그렇게 헛되이 낭비된 것만은 아냐. 그녀에게서 비싼 값을 줘도 살 수 없는 멋진 것을, 장미 한 송이와 향기로운 담배 한 개비와 샴페인 한 잔을 받았잖아." 이렇게 말함으로써 내가 그 권태로운 시간에 미학적 성격을 부여하고 그 시간을 정당화하여 구제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권태를 달래 주는 이유를 필요로 한다는 자체가 미학적인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지도 몰랐다. 로베르와 그의 애인은, 자신들이 몇 분 전에 싸웠다는 것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 일에 대해 어떤 암시도 변명도 하려 하지 않았으며, 지금의 태도와 대조를 보이는 점에 대해서도 변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샴페인을 마신 탓에 나는 리브벨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취기를, 아마도 완전히 똑같은 취기는 아니겠지만, 조금 느끼기 시작했다. 햇빛이나 여행이 주는 취기에서 시작하여 피로나 술이 주는 취기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취기가, 바다의 심연마냥 ‘수위'가 다른 갖가지 다른 도수의 취기들이, 바로 그것이 다다른 정확힌 깊이에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특별한 종류의 인간을 드러나게 한다. 생루가 있는 방은 작았지만, 방을 장식하는 유일한 거울이 무한한 원경에 따라 30여개의 다른 거울들을 반사하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저녁마다 거울 테두리 윗부분에 달린 전구에 불이 켜질 때면 그와 비슷한 30여 개의 반사 행렬이 이어지면서, 홀로 술 마시는 고독한 자에게 취기로 흥분한 감각과 동시에 그의 주변 공간이 무한히 증식되는 느낌을, 홀로 비좁은 작은 방에 갇혔으면서도 그 무한하고도 빛나는 곡선 탓에 '파리 정원'의 오솔길보다 더 멀리 뻗어 있는 뭔가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던 내가 거울에서 이런 술꾼의 모습을 보려는 그 순간, 한 낯설고 추악한 자가 날 응시하는 걸 보았다. 도취의 기쁨은 혐오감보다 더 컸다. 쾌할함 때문인지 혹은 허세 때문인지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그자도 내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감각적인 것이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지는 순간의 그런 덧없는 강력한 세력 아래 있다고 느꼈으므로, 나의 유일한 슬픔 때문에 지금 막 거울에서 포착한 그 추악한 자아가 어쩌면 그의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으며, 그리하여 내 평생 이 낯선 자를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잘 알지 못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권
게르망트 쪽
中
'03. transcription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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