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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essay/「결백한 침묵 - 프리퀄」 2019

2 / 좋아하는 일

스물 한 살, 나한테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이라는 게 생겼다. 건축 설계였다. 어떤 일을 새롭게 배워나가는 것이 그토록 마냥 재미 있고, 더 열심히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것은 처음이었다. 건축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막연하게 그 일이 나랑 잘 맞는다 느꼈고, 건축과 나의 관계 속으로 온전히 몰입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통해서 구현되고 있다는 것에 설렘을 느꼈다. 그 결과물에 대한 공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또한 날 벅차게 했다. 애초에 잘한다고 느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잘하고 못하는 것은 당시 나에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만이 중요했다. 그만큼 겁이 없었고, 순수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을 때 삶에 특별한 생기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일이라는 요소가 내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건축이 내게 중요해지면서 내 일상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일단 1학년 내내 내 주위를 감돌았던 허전함과 불안함이 잦아들었다. 대학교라는 장소와 내가 드디어 서로 간의 접점을 찾게 되었으니까. 마음을 붙이고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냈으니 그것에 몰두하기만 하면 되었고, 그러자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복작대던 쓸데없는 고민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중심이 다시 꼿꼿해지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두 번째로 일에 무게가 실리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예전에 비해 다소 소원해졌다. 몇몇 친구들은 연락이 잘 안 된다고 불평하거나 서운함을 표했고 그럴 때마다 미안하고 난감하긴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때 나는 나와 사람들 사이에 생긴 그 적당한 거리가 좋았다. 사람들 틈 속에서 방황할 때 끊임없이 시달렸던 각종 혼란과 불안함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안전한 보호막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던 세상의 반대쪽에, 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에는 내 주위에 가족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이런 저런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새로운 또 하나의 세상에 사람은 나 하나 뿐이었다. 그게 좋았다. 그곳에는 나와 내가 좋아하는 일만이 있었다. 나아가 나는 그곳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더욱더 채워나갈 작정이었다.

 

좋아하는 일, 혹은 자신과 맞는 일. 이를 찾아내는 것은 인생의 큰 숙제 중 하나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인생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그러나 자신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간절하게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세상에 나만의 영역을 마련하고, 나에게 좀 더 걸맞은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것. 이를 이루기 위해 어디선가 혼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스물 한 살 때 운 좋게 건축이라는 좋아하는 일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싸움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내가 첫 ‘좋아하는 일’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에 대해 여기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후 그 일이 나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갔는지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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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생각에 우울해졌다. 여행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그냥 허무하게 사라져버릴까 봐, 다시 예전의 헛헛한 하루하루로 돌아가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여행 중 수집했던 종이지도와 티켓을 스크랩북에 정성스레 정리해 책장에 꽂아두었다. 이런 유의 수집욕은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과거에 경험한 것들이 나의 현재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무로 돌아가버릴까 봐 불안한 마음. 학기가 시작되었다. 2학년이 되었다. 여행 중 가슴 속을 가득 채워주었던 무언가, 아무래도 일상 속에서는 그것을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있어야 할 것이 결여된 느낌, 채워져야 할 것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 불만족스러움. 이를 해결해보기 위해 책도 읽어보고 친구도 만나보고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하던 대로 그저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2학년이 되자 건축 관련 수업이 많아졌다. 당연히 설계 수업도 있었다.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듣는 설계 수업이었다. 전공을 설계 쪽으로 선택하긴 했지만, 여전히 난 디자인 일에 확신과 자신감이 없는 상태였다. 그 학기에 주어진 과제는 두 사람이 사는 작은 집 하나를 설계하는 프로젝트였다. 건물 하나를 제대로 디자인해보는 일은 처음이었다. (1학년 때 들었던 설계 수업은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입문하는 정도의 저학년용 수업으로, ‘건축 설계’라기엔 애매했다) 매주 주어지는 과제들은 너무나 생소했다. ‘자신의 집에 살게 될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정해오세요’ 부터 시작해서, ‘공간 컨셉을 잡고 모형으로 만들어오세요’, ‘컨셉을 구체화해 오세요’, ‘평면도를 그려오세요’, ‘1:50 스케일로 마감 모형을 만들어오세요’, ‘발표용 패널을 만들어오세요’.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긴 한 건지 가늠하지 못한 채 그냥 따라가기 바빴다. 근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 점점 재미가 있었다. 초반에 내가 별 생각 없이 끄적인 그림이 교수님과의 몇 번의 대화를 거치면서 내용이 덧붙여지고 점차 있음직한 공간이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내가 구상한 공간을 모형으로 구현해내는 작업도 재미 있었다. 모형 재료를 사러 화방에 가는 것도, 화방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모형 재료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모형을 만드느라 설계실에서 밤을 새우는 것도 즐거웠다. 또 난 이때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익히면서 디지털 이미지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언어 하나를 터득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개념으로 추상화한 뒤, 그것을 보기 좋은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전달하는 작업에 순수한 재미와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나는 그 학기에 프로젝트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했다. 예상치 못하게 주변의 칭찬을 받았다. 좋은 평가도 받았다. 학기 초의 불만족스러움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건축을 좋아하게 되었다. 건축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느낀 특별한 순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새 점점 스며들었던 것 같다. 한 학기 동안 내가 명백히 어딘가 달라졌고, 뭔가 성장한 것 같다는 감각이 있었다. 학기가 끝나고 나는 자연스럽게 건축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무척 특별하고 소중했다.

 

그 학기를 계기로, 나는 내 삶의 중심에 건축을 가져다 놓게 되었다. 별다른 고민도 없이, 당연한 흐름에 따라 그렇게 되었다. 헌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디자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끌고 갔던 것 같지가 않았다. 과제가 먼저 주어졌고, 나는 매주 그 과제 하나 하나에 어찌어찌 대응해 나갔을 뿐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먼저 내가 내놓은 생각들 중에서 살리면 좋을 포인트를 짚어주셨고 나는 그 가이드에 따랐는데, 그 조언이 결과적으로 디자인 전체 컨셉을 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물론 직접 결과물을 완성시킨 것은 나 스스로 해낸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내가’ 만든 것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설계자로서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간 느낌이었다. ‘방향을 결정하는 것’. 나는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생각해낼 줄은 알았지만, 스스로가 떠올린 아이디어에 대해 좋다 나쁘다 판단할 만한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교수님의 조언이 틈을 타고 들어와 전체 방향을 정하도록 내버려두게 된 것이었다.

 

여름방학 때 과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카메라를 샀다. 카메라에 대한 욕구가 생긴 계기는 유럽여행이었다. 그때 언니는 미러리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냥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 한 달 동안 스마트폰과 카메라의 차이를 너무 절실하게 깨달아버린 것이었다.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신경 써서 찍어보려고 노력했다. 사진을 찍는 것은 결정을 연습하는 일과 같았다. 눈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들 중 내가 특별히 간직하고 싶은 장면을 탁 하고 골라내는 일. 마음이 이걸로 결정, 하는 순간 곧바로 셔터를 눌러야 한다. 더 빨라서도 늦어서도 안 된다. 나는 사진을 통해, 세상 속에서 뭔가 보기 좋은 것들을 집어내는 나만의 눈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2학기가 되었다. 세 번째 설계 수업이 시작되었다. 과제는 신촌역 근처에 커뮤니티 센터를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실제 땅이 주어졌다. 신촌역과 경의 중앙선을 잇는 길쭉한 땅이었다. (주소지는 마포구 노고산동 49-67. 현재 그곳에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때는 2014년이었으니, 그 공원도 경의선 책거리도 생기기 전이었다.) 프로젝트는 가상이었지만, 실제 땅에 가보고 사진을 찍고 땅과 그 주변에 대한 리서치를 했다. 물론 리서치라 해 봤자 대충 흉내만 내는 정도였다. 어떤 땅에 대해 온전히 알고 이해한다는 건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고,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서울로 나온 지 2년이 채 안 된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뭐랄까, 처음으로 그런 일을 해보면서 건축이라는 일에 약간 더 몸으로 가까워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다.

 

그 학기에 내가 초점을 둔 지점은 따로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전체 과정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싶었다. 그 결과 이건 내가 한 프로젝트다,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랬다. 건물의 형태가 조금씩 빚어질 때마다 나에게 질문했다. 이게 내가 생각해낸 모양이 맞나, 나한테서 우러나온 느낌이 맞나, 어디서 보고 들은 것들을 나도 모르게 베끼지는 않았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이 결과물을 원했던 것이 맞나. 그것은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물음이기도 했다. 창작을 할 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방하게 되는 건 창작자가 특별히 정직하지 않거나 부도덕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뭔가를 새로이 만들 때는 자기 안의 느낌에 에너지를 오롯이 집중하고 그 느낌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속에 떠다니는 것들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끄집어내야 하는데, 그 집중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할 때, 어디선가 보고 들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이나 생각, 의견 같은 것들이 그만 스르르 새어 들어와 버리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집중력이 자꾸 흐려져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부터 그 집중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창작은 일종의 권력 싸움이다. 내가 힘이 약하면 다른 누군가에게 권력을 내어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전 학기의 나에게 힘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그 힘을 내 안에서 찾아내보고 싶었다.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 학기 동안 단계 하나 하나를 착실하게 수행해나갔다.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되었다. 두 번째 설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였다. 결과물은 내가 원했던 것만큼 독창적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독창성이라는 것은 겨우 한 번의 시도로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어쨌든 아이디어를 내 안에서 이끌어낸 뒤, 그것이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도록 놔두지 않고, 나 스스로의 판단력에 기대어 끝까지 지켜나가는 일에는 얼추 성공했던 것 같다. 내 프로젝트에는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명확한 줄기가 있었으며, 나는 단계 단계마다 내가 어떤 질문 앞에 놓였었고 어떤 답을 내놓았었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감각이었다. 앞으로 나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나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기반 같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과정 하나 하나에 성실하게 임한 덕분에, 나는 결과물을 보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첫째, 시각적인 조형 감각. 어느 정도 보기에 편안하고 균형감이 있는 형태가 어떤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았다. 아직 자기만의 스타일이 보인다고 하기엔 턱없이 모자랐고 다소 경직된 느낌이 강했지만, 형태를 지어낸 뒤 그것을 보기 좋게 다듬을 수 있을 정도의 미적 센스는 있었다. 둘째, 커뮤니케이션 능력. 나는 내가 밟아온 과정에 대해 다른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각종 이미지와 글을 동원해 설명하는 일을 잘했다. 다시 말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잘 만들었다. 난 본능적으로 그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다른 친구들보다 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꽤 많이 쏟았으며, 실제로 내가 만든 자료는 전달력이 꽤 좋은 편이었다. 셋째는 손재주. 여기서 손재주라 하면 모형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모형 만들기는 손에 자와 칼을 들고 자기 멋대로 굴려고 하는 재료 및 접착제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일이다. 재료와 접착제의 반항에 지지 않고 내가 원했던 느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내가 구상한 건물의 본질과 매력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일종의 집념 같은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유의 집요함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반대로 내 단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실험정신이 부족하다는 것. 나는 마감 기한에 맞춰서 어느 정도 퀄리티를 갖춘 결과물을 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래서 새로운 도전에는 소극적이었다. 디자인을 할 때 직선에 통제하기 힘든 곡선을 사용한다던가, 모형을 만들 때 석고와 같이 다루기 번거로운 재료를 쓴다던가 하는. 둘째, 생동감이 부족했다. 시각적이고 형태적인 완성도에 집중하느라 그 건물이 놓이게 될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 및 반영을 게을리했던 탓이었다. 한마디로 프로젝트에 ‘이야기’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째, 뭐랄까, 내 프로젝트에는 여지가 없었다. 과정도 성실하게 밟았고 전반적인 완성도도 좋아서 딱히 크게 비판할 거리는 없는 프로젝트였지만, 그만큼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닫아걸려는 느낌이 짙었다. 뭔가 자신만의 것을 내보이려고 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져야 할 꿈틀거림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결정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길 만한 힘이 부족했다.

 

내가 당시 인식한 나의 장점과 단점이 ‘건축가로서의’ 장점과 단점이라 할 수 있는가에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건축가라는 직업의 정체성 문제로 연결되는데, 나는 아직 내가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지는 않겠다. 어쨌든 2학년 때 들었던 두 번의 건축 설계 수업은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나는 건축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다. 2학년 1학기에 건축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갖게 된 후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그 일을 통해 나의 장단점을 인식하게 된 나는, 그 다음에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설계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을 담아내는 것. ‘나만이 건넬 수 있는 메시지’. 그것이 필요했다. 허나 그 숙제는 단번에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3학년 1학기 때 섣불리 그 일을 시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만다. 그러면서 건축과 나의 관계는 복잡하게 엉키기 시작했고, 그것을 계기로 나는 대학생활 전체의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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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있어 건축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에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답하는 일을 보류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고. 나는 건축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즐겼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좋아하는 것과 그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그 사이에는 거대한 강 하나가 흐른다. 그 강에는 꽤나 거센 물살이 흐른다. 어떤 일을 진지하게 자신의 직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물살을 견뎌내며 그 강을 혼자 힘으로 건너보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 여정에는 원치 않았던 것, 아프거나 힘든 것,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 딸려올 수도 있다. 어떤 일의 아름다운 면만 보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의 아름다운 면만 보고서 삶에 들일 수는 없는 것처럼.

 

나는 직업이라는 건 일종의 통로라고 생각한다. 나와 세상을 ‘공식적으로’ 이어주는 통로. 그 통로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모양, 구조,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건축 설계를 할 땐 ‘건축가’라는 통로에 나를 집어넣게 되고, 글을 쓸 땐 ‘작가’라는 통로에 나를 집어넣어보게 된다. 우리는 세상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수많은 통로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어떤 통로를 고르냐에 따라 최종적으로 세상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도 달라진다. 통로들의 생김새가 다른 만큼 내가 그것을 관통해 지나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다르기 때문이다. 또 나와 당신이 같은 통로를 지난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내가 겪을 사건들과 당신이 겪을 사건들은 다를 것이다. 나와 당신이 서로 다른 사람이니까. 일생에 하나의 통로만을 걷겠다 다짐하고 비좁은 길이든 막힌 길이든 따지지 않고 꿋꿋이 걸어나가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개의 통로를 통해서 세상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보려는 사람도 있다. 마음에 쏙 드는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서는 자신을 만날 때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한다. 부딪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면서.

 

스물 한 살의 나는 첫 번째 시행착오를 막 시작했던 참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때 난 순진한 희망에 차 있었다. 난 건축이라는 통로가 마음에 들었고, 그것을 통해 꽤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고 있다고 느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그 일과 관계 맺음으로써 생겨난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좋아했다. 나는 그곳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아직은 그 새로운 세상이 다소 밋밋하고 단조로웠던 것이다. 그러려면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야만 했다. 건축과 나의 관계에 집중하는 1년 동안 사람들과 내 세상 사이에 적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던 나는, 문을 살짝 열어보기로 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조심스레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하는 말, 건축에 대해 하는 말, 어느 쪽이든 좋았다. 이로 인해 나의 다음 한 학기는 여태껏 가장 정신 없고 혼란스러운 학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당신의 첫 만남은 무엇이었을까. 이곳 저곳을 부유하던 당신이라는 존재에게, 처음으로 의미를 부여해주었던 첫 번째 관계. 그것은 일이었을 수도 있고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둘이 동시에 찾아왔던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곧이어 당신에게 상실이나 고통을 가져다 주었을 수도 있고, 이후 당신의 삶을 어렵게 꼬아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 첫 순간만큼은 영원히 소중하게 여기길 바란다. 적어도 그때 그 순간 당신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순수하고 예뻤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