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브레 주변에서 산책을 하려면 '길'이 두 개 있었는데, 이 두 '길'은 아주 반대 방향에 있어서 우리가 집을 나갈 때면 결코 같은 문으로 나가지 않았다. 하나는 메제글리즈라비뇌즈였는데, 그 길로 가려면 스완 씨네 소유지를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스완네 집 쪽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길은 게르망트 쪽이었다. 메제글리즈라비뇌즈에 대해서는 그런 '길'이 있다는 것과, 일요일이면 이상한 사람들이 콩브레에 와서 산책한다는 것밖에는 알지 못했다. 그 이상한 사람들이란 이번에는 아주머니조차도 알지 못하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이런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메제글리즈에서 왔을 것 같은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게르망트로 말하자면, 어느 날 더 많이 알게 되었지만 아주 오랜 후의 일이다. 내 소년 시절을 통해 메제글리즈가 이미 더 이상 콩브레 토양과는 닮지 않은 땅의 기복 탓에 멀리 가며 갈수록 시야에서 사라지는 지평선처럼 접근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면, 게르망트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것으로, 그 '길'의 종점과도 같은, 적도나 극지방, 혹은 동야처럼 일종의 추상적이고 지리적인 표현이었다. 따라서 메제글리즈로 가기 위해 '게르망트를 통해서 간다든가' 그 반대로 하는 것은, 마치 서쪽으로 가기 위해 동쪽을 통한다고 하는 말만큼이나 아무 의미 없이 들렸을 것이다. 아버지는 늘 메제글리즈 쪽은 아버지가 보아 온 가장 아름다운 평원의 풍경이며, 게르망트 쪽은 전형적인 냇가 풍경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 두 길을 서로 다른 두 실체로 간주하며 오로지 정신적인 창조물에만 속하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두 길 중 어느 한 길의 작은 부분도 내게는 아주 소중했고, 그 길의 특별한 우월성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한편 이런 것들에 비하면, 어느 한쪽의 성스러운 땅에 도착하기까지 평원의 관념적인 풍경이나 내의 관념적인 풍경 가운데 놓인 순전히 물질적인 길들은, 마치 연극에 반한 관객 눈에 비치는 극장에 인접한 골목길들과 마찬가지로, 바라볼 가치도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길 사이에 킬로미터가 나타내는 거리감 이상의 것을 두고 있었는데, 그 거리감은 내가 그 길들을 생각할 때 내 머릿속 두 부분 사이에 놓인 거리감 같은 것으로, 단지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분리하고 각각 다른 차원으로 집어넣는 그런 정신적인 거리감이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우리 같은 날 같은 산책길로 한 번은 메제글리즈, 다른 한 번은 게르망트 쪽 하면서 결코 두 방향으로 동시에 간 적 없는 습관 때문에 더욱더 절대적인 것이 되어, 두 길은 멀리서 서로 알아보지 못한 채, 여러 다른 오후들을 소통이 안 되는 밀폐된 항아리 안에 가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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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내 삶의 수많은 작은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우리가 나란히 보내는 여러 다양한 삶 중에서도 가장 변화가 많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지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이 삶은 우리 안에서 서서히 진행되어, 우리를 위해 의미와 양상을 변화시켜 주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진리 발견을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고,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채로 준비해 온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진리는 우리 눈에 보이게 된 날에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 풀밭 위에서 놀던 꽃들, 햇빛을 받으며 흘러가던 물, 진리의 출현을 둘러싼 그 모든 풍경의 추억에는 무의식적이고 방심한 표정이 뒤따른다. 물론 그 풍경은 이 보잘것없는 행인, 이 꿈꾸는 소년에 의해 - 군중 속에 휩쓸린 회고록 작가가 왕을 바라보듯이 - 오랫동안 관조되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한 모퉁이, 정원의 한 가장자리가 이 관조자 덕분에 그들의 가장 덧없는 특성 속에서 살아남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곧 들장미에 자리를 내줄, 울타리를 따라 감도는 산사 꽃 향기나, 오솔길 자갈돌 위에서 들리던 메아리 없는 발자국 소리, 수초에 부딪쳐 이내 사라지는 냇물 거품, 이 모든 것들을 내 열광하는 마음이 품에 안고 많은 세월을 건너뛰게 하는 데 성공했다. 주변 길은 사라졌고, 또 그 길을 밟은 이들이나, 그 길을 밟은 이들에 대한 추억도 사라졌다. 때로는 한 조각 풍경이 오늘날까지도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와, 내 상념 속에서 꽃이 만발한 델로스 섬처럼 불확실하게 떠돌아다니지만 난 그것이 어떤 나라, 어떤 시대에서 - 어쩌면 단순히 어떤 꿈에서- 왔는지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을, 내 정신적인 토양의 깊은 지층으로, 아직도 내가 기대고 있는 견고한 땅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사물들을, 존재들을 믿었다. 내가 이 두 길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사물들이나 존재들만이 아직도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아직도 내게 기쁨을 주는 유일한 것이다. 창조에 대한 믿음이 내 마음속에서 고갈된 탓인지, 아니면 현실이란 기억을 통해서만 이루어져서 그런 건지, 오늘 처음으로 내 눈에 보이는 꽃들은 진짜 꽃처럼 보이지 않는다. 라일락, 산사꽃, 수레국화, 개양귀비, 사과나무가 있는 메제글리즈 쪽과, 올챙이가 헤엄치는 냇가와 수련과 금빛 미나리아재비가 있는 게르망트 쪽은 내가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고장의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낚시를 하러 가고, 카누를 타고, 고딕풍 요새의 유적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생탕드레데샹 성당같이 밀밭 한가운데 기념비적인 건초더미 같은 시골풍 황금빛 성당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여행을 할 때 들판에서 우연히 수레국화나 산사나무, 사과나무를 보면, 그것들은 내 과거 지평과 같은 깊이에 놓여 있어 즉각적으로 내 마음과 교감한다. 그렇지만 어느 장소에나 고유하고 개별적인 것은 있기 마련이므로, 게르망트 쪽을 다시 한 번 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 누군가가 나를 비본의 수련만큼이나 아름다운, 혹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수련이 있는 냇가에 데려간다 해도 내 욕망은 충족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저녁에 집에 도착했을 때 - 훗날 내가 사랑을 하면서, 사랑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고뇌가 내 안에서 눈을 뜨는 시간이 될 때 - 내 어머니보다 더 아름답고 더 지적인 분이 저녁 식사를 하러 온다 해도 결코 내가 원하지 않았을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내가 아무 동요 없이 행복하고 평온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데 필요한 것은 어머니였고, 그런 평온함은 훗날 어떤 연인도 내게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연인을 믿을 때조차도 연인을 의심하며, 다른 속셈이나 다른 의도 없이 오로지 나만을 위한 어머니의 키스 같은, 그렇게 완전하게 연인의 마음을 소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느 어머니가 나를 향해 얼굴을 기울일 때, 눈 아래 뭔가 흠이 있어도 그것마저 어머니의 한 부분인 듯 사랑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것은, 내가 알았던 게르망트 쪽, 붙어 있는 두 농장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의 떡갈나무 오솔길 입구에 있던 농장과, 햇빛이 늪처럼 주위를 반사할 때면 사과나무 잎들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던 그 초원과, 이따금 밤의 꿈속에서 그 개별성이 나를 환상적인 힘으로 껴안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찾을 수 없었던 그 풍경이다.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내게 여러 다른 인상들을 동시에 느끼게 했으므로, 아마도 그 인상들은 결코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가 되어 훗날 내게 맣은 환멸을 맛보게 했고, 또 많은 과오를 범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끔 어떤 사람이 산사나무의 울타리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난 분별없이 그 사람을 다시 보고 싶어 했고, 또는 여행에 대한 단순한 욕망만으로도 사랑이 되돌아온 걸로 믿고, 또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믿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그 때문에 오늘날 내가 받는 인상들 가운데에는 이 두 길과 연결되는 인상들이 언제나 존재하며, 그 인상들에 토대와 깊이를 주어 다른 인상들보다 더 높은 차원을 부여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 두 길은 그 인상들에 대해 나만이 아는 어떤 매력이나 의미를 덧붙인다. 여름날 저녁 잔잔하던 하늘이 갑자기 짐승처럼 으르렁거려 사람들이 이런 폭우를 원망할 때면, 나는 메제글리즈 쪽에 홀로 머무르면서 비 내리는 소리 너머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래 지속되는 라일락 향기를 들이마시며 황홀해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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