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1권 / 스완네 집 쪽으로 ____ 06. 도시의 이름들

 


 

나는 다음 날이 되는 대로, 철도 회사 광고나 유람 여행 안내서에서 기차 출발 시간을 읽을 때면 항상 마음이 두근거리는, 저 1시 22분에 출발하는 자비롭고 멋진 기차를 타고 싶었다. 그것은 내게 오후 어느 정확한 시점에 매혹적인 흔적 하나를, 신비로운 표시를 도려 낸 것처럼 보였다. 거기서부터 이탈한 시간들은 물론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으로 이어지겠지만, 그 저녁이나 아침을 파리에서 보내는 대신 기차가 지나가는 도시 중 하나에서, 우리에게 선택하도록 허락해 준 도시에서 볼 것이었다. 왜냐하면 기차는 바이외, 쿠탕스, 비트레, 케스탕베르, 퐁토르송, 발베크, 라니용, 랑발, 베노데트, 퐁타벵, 캥페를레에서 정차했고, 내게 제공하는 이름들을 가득 식도서는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도시들 중 어느 것도 희생할 수 없었으므로, 어느 곳을 더 좋아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만약 부모님께서 허락만 해 주셨다면 그 기차를 기다리는 대신 그날 저녁에라도 서둘러 옷을 입고 떠나 거친 바다 위로 아침 해가 솟아오를 무렵 발베크에 도착해서는, 날아오는 파도 거품을 피해 페르시아풍 성당 안으로 몸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활절 방학이 다가오면서, 이번 휴가에는 이탈리아 북부로 보내 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에, 지금까지 나를 가득 채웠던, 탑에는 바닷새들이 울어 대고 절벽처럼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성당 가까이 가자 거친 해변 사방에서는 파도가 높이 치솟아 오르는 폭풍우의 꿈은 단번에 사라지고, 그런 풍경이 이탈리아 북부와는 반대되며 이탈리아 풍경을 약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매력을 떨쳐버리고 그 꿈도 물리치면서, 그와는 반대되는 가장 알록달록한 봄의 꿈으로, 그러나 아직은 뾰족한 얼음서리가 날카로운 콩브레의 봄이 아니라, 이미 백합과 아네모네로 뒤덮인 피에졸레 들판의 봄, 황금빛 배경으로 피렌체를 눈부시게 하는 안젤리코의 그림에 나오는 들판과도 흡사한 그런 봄의 꿈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는 단지 햇살이, 향기가, 색깔만이 가치있다고 생각되었다. 이미지들이 교차하면서 내 안에서 정면으로 욕망의 변화를 일으켰고, 또 음악에서 이따금 일어나는 것처럼 갑자기 나의 감수성에 완전한 음색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계절이 바뀌는 것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단순히 대기 변화만으로도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내 안에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계절 안에서 다른 계절의 하루가 길을 잃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런 날이면 우리는 금세 그 계절을 누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 계절 고유의 기쁨을 열망하며, 우리가 지금까지 몽상하던 꿈들을 멈춘다. 마치 행복의 날을 적어 놓은 달력에, 그날이 돌아오기도 전에 더 빨리 또는 더 늦게, 다른 장에서 떼어 낸 달력 한 장을 끼워 넣은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의 안락과 건강이 자연 현상으로부터 아직은 우발적이고 사소한 이득밖에 취하지 못하지만, 머지않아 과학이 이런 자연 현상을 지배하여 마음대로 조종하고 우연이란 것의 보호나 허락 없이도 쉽게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우리 손에 쥐어 줄 날이 오듯이, 대서양과 이탈리아에 대한 나의 꿈도 오로지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만 따르지 않게 되었다. 그 꿈을 다시 나타나게 하려면 단지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발베크, 베네치아, 피렌체 같은 이름 안에는 그 이름이 가리키는 장소들이 불러일으킨 욕망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봄에도 발베크라는 이름을 책 속에서 발견하기만 하면, 폭풍우와 노르망디의 고딕 양식에 대한 욕망을 내 마음속에 눈뜨게 하는 데 충분했고, 폭풍우가 부는 날에도 피렌체 또는 베네치아라는 이름은 태양과 백합, 총독 궁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대한 욕망을 일깨웠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