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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essay/「결백한 침묵 - 프리퀄」 2019

6 / 이해하려는 시도

#1

 

우리는 우리와 다른 사람을 왜 두려워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발견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의 가시를 세운다. 어른들의 칭찬을 못 받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예뻐하는 아이들의 우쭐함을 두려워하고,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아온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날카로움을 두려워한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은 반항아들의 어긋함을 두려워하고, 세상에 대들며 사는 아이들은 모범생들의 꼿꼿함을 두려워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은 혼자 있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밀어냄을 두려워하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은 관계를 바라는 사람들의 끌어당김을 두려워한다. 낭만과 감상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현실적인 사람들의 차가움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감정적인 사람들의 열기를 두려워한다. 불안과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를 두려워하고, 안정적이고 평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의 어두운 그림자를 두려워한다.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을 두려워한다. 여자는 남자를 두려워하고, 남자는 여자를 두려워한다. 나와 당신 또한,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를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 또한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특히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바닥을 마주친 이래로, 나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거나 어려움에 빠지지 않기 위한 단단한 보호막을 구축해왔다. 그러는 내내 단 한 번도, 중학교 1학년 때 그 아이가 왜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었던 건지 이해해보려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내가 다치지 않는 것만이 중요했고, 그래서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만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 아이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쩌면 그 아이도 나처럼 새로운 환경, 새로운 아이들 속에서 뭔가가 불안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상황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었던 낯선 무언가가 그 아이의 두려움을 어떤 식으로든 자극했던 게 아니었을까.

 

복학 첫 학기, 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내가 사람들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오래 있었던 탓인지, 온갖 사람들이 한없이 좋고 사랑스러웠다. 알던 사람들은 반가웠고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호기심이 일었다. 대학생이 된 이래 학교에 가는 매일 매일이 사람들을 만날 거라는 사실만으로 설레는 건 처음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날 행복하게 했다. 이상하고 신기했다. 나한테 이런 마음이 있었다니. 낯선 것 같다가도 익숙했다. 아무래도 새롭게 생겨난 마음이 아니라 원래 있었는데 오래도록 잊어버리고 있었던 마음인 것 같았다. 어릴 때 사람을 좋아했었던 기억이 차츰 떠올랐다. 선물 사는 것을 좋아했었고, 편지 쓰는 것도 좋아했었고, 생일파티를 여는데 친구 한 명 한 명마다 각각 어울리는 모양으로 초대장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서로 다르게 생긴 생일초대장을 열심히 만들기도 했었다. 이 마음을 어쩌다 잃어버렸던 걸까. 왜 변했을까. 언제부터 나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너무 가까운 관계는 싫다고, 그렇게 믿기 시작했던 걸까. 나는 이 행복을 다시는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건지. 왜 좋아하기를 그만두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던 건지.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들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두려워했던 동안, 그들도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두려움과 상대의 두려움이 부딪치면 두려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 탁하고 뿌연 두려움의 덩어리가 나와 그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으면 서로의 진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느낄 수도 없었고, 그러니 만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의 막 바깥으로 나가보려고 용기를 몇 번 내보았지만, 상대방이 두려움으로 방어막을 치면 나도 따라서 본능적으로 다시 보호막을 세웠다. 이 두려움이 저 두려움을 부르고, 그 두려움이 또 다른 두려움을 자극하는, 이 악순환의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걸까,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이 없어질수록 쓸쓸해졌다. 쓸쓸함은 외로움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외로움은 내가 사랑을 받고 싶은데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을 때 빠져드는 감정이다. 반면에 쓸쓸함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을 때 느껴지는 마음이었다.       

 

/

 

#2

 

학교로 돌아온 나는 오랜만에 다시 설계 수업을 듣게 되었다. 1년을 쉬고 난 후, 건축에 대한 내 태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베네치아와 스위스에 갔었던 지난 해 가을 이후로 왜인지 건축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이 서서히 사그라들었고, 휴학 때는 건축보다 철학이나 에세이에 끌려서 한참 책만 읽었다. 복학하기 전 여름, 다시 건축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러운 건축, 편안한 건축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머릿속을 지나다니는 생각이었을 뿐 ‘그걸 내 손으로 어서 만들어내고 싶다’ 는 창작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복학하고 나서도 창작욕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설계 과제가 처음으로 숙제처럼 느껴졌다. 과제가 주어지면 의욕이 나서 신이 났던 예전과 달리, 의무감에 하는 기분이 들었다. 건축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건축의 세계를 동경하고 애정하는 마음과, 그 세상 속에서 내 자리를 찾고 싶은 감정적인 욕구가 사라졌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창작보다는 생각하는 일에 더 끌렸다. 내가 그 학기에 좋아했던 강의는 <건축 이론과 실제>라는 전공 수업과 <동양의 가치와 철학>이라는 교양 수업이었다. <건축 이론과 실제>는 교환학생 가기 전 <동양건축사>를 가르쳐주셨던 교수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커리큘럼 상으로는 4학년에 배치되어 있는 수업인데, 동양건축사 시간에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 1년 동안 내가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이번 학기에 당겨서 듣기로 했다. 강의의 주요 내용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서양 건축의 기반이 되었던 사상에 대해 배우고, 각 사상을 비판하면서 맹점을 짚어보는 것이었다. 유럽에 있을 때 직접 가 본 건축물도 꽤 많이 다루고, 이탈리아에서 들은 역사 수업이랑도 내용이 연결돼서 좋았다. 학생들은 매 수업을 듣고 난 후 자신의 견해를 담은 짧은 쪽글을 써서 제출해야 했고, 학기 말에 수업을 다 들은 뒤에는 각자 스스로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를 정해서 1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페이퍼를 써야 했다. 건축과 학생들이 거의 다 이과 출신인지라, 각종 이론과 사상에 대해 논의하는 일도 스스로 생각해보고 싶은 주제를 정하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나 혼자 보려고 끄적거리는 글만 써왔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내 생각을 드러내고 설득하기 위한 글을 써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글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매주마다 실감했다. 나름대로 생각이 정리된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 내 의견을 반박하게 되고, 그러면 또다시 홀로 생각에 빠졌다. 글이란 건 절대 한 번에 써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아는 것도 많아야 하는 데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쓰고, 지우고, 생각하고, 쓰고, 지우고, 이 과정을 엄청나게 반복해야 비로소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잘 썼다, 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제출한 쪽글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학기 말에 나는 <건축 다이어그램의 유용성과 한계>라는 주제로 페이퍼를 진행했다. 내용은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내가 대학교에 들어와 건축을 처음 접했을 때 무비판적으로 흡수했던 설계 방식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해보기 위한 글이었다. 난 이 수업을 통해서, 혼자 하던 생각을 글이라는 수단에 기대어 스스로 정리하고 밖으로 꺼내는 법을 처음으로 배울 수 있었다.    

 

<동양의 가치와 철학>은 철학과 수업이라 강의를 들으러 공대와 조금 멀리 떨어진 건물로 걸어가야 했다. 나는 그 길을 걷는 시간이 좋았다. 공대에서 그 건물까지의 짧고 여유로운 산책은, 나를 건축과 학생에서 그냥 평범한 대학생으로 모드를 전환시켜주는 것 같았다. 이 모드 전환은,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고 생산해내야 하는 사람’에서 ‘그럴 필요 없이 마음껏 헤매고 고민하고 질문해도 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했다. 난 종종 그 길 위에서 가을을 즐겼다. 그 해 가을에는 하늘이 깊고 청명한 날이 많았다. 길에 늘어선 오래된 나무들은 노랗고 붉었다. 강의실에서는 커다랗게 우거진 단풍나무가 창밖으로 보였다. <동양의 가치와 철학> 교수님은 첫 시간에, 수업보다 중요한 일이 생기면 자기한테 사정을 말하고 결석해도 좋다고 하셨다. 인생에서 너무도 중요한 책을 만나서 꼭 그 책을 그 순간에 읽어야 했다든지,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사람과 헤어져서 마음이 아팠다던지, 그러면 얼마든지 빠져도 된다는 말씀이었다. 진짜 그렇게 말하면 출석 처리를 해주실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너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만남, 혹은 이별이 일어났다면, 얼마든지 잠시 너의 의무를 저버려도 좋다.’

 

<동양의 가치와 철학> 수업에서는 공자, 맹자, 순자, 노자, 장자 등에 대해 배우고 후반부에는 교수님께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깊으신 사주와 주역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배웠다. 교수님께서는 이따금씩 참고문헌을 소개해주기 위해서 생전 처음 보는 낡은 책들을 가득 담은 짐가방을 끌고 오시기도 했다. 특별히 본인이 좋아하는 책에 대해 설명하실 때는 눈이 반짝반짝 하셨다. 동양 철학은 서양 철학에 비해서 어딘가 따스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울컥해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특히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었던 건 노자였다. 그의 사상이 옳다고 여겼다기보다는, 당시 내 마음에 스며들어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배움을 끊어 근심을 없앤다.

예와 응, 두 대답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선과 악, 둘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사람들이 겁내는 것을 나도 따라서 겁내야 한다면,

그 황당함이란 도무지 끝이 없겠구나.

사람들은 저마다 밝고 밝아서 큰 잔치를 벌이는 것 같고

봄 동산에 오르는 것 같은데

나 홀로 두려워하기를,

첫 울음 울기 전의 젖먹이처럼 아무 낌새가 없구나.

떠돌고 떠돌기를 돌아갈 곳이 없는 자 같구나.

사람들은 저마다 넉넉한데 나 홀로 버려진 것 같도다.

나야말로 어리석은 자의 마음인가?

멍청하고 멍청하도다.

세상 사람들은 빛나고 빛나는데 나 홀로 어둡고

세상 사람들은 똑똑하고 똑똑한데 나 홀로 어수룩하여

아득하기가 바다같구나.

쓸쓸하여라, 멈출 곳이 없는 자 같도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 홀로 완고하고 비루하도다.

나 홀로 사람들과 달리 어미 먹기를 귀하게 여긴다.

 

「도덕경」20장, 노자

(「노자소감」, 이관옥, 삼인, 2013 中 )

 

노자는 비움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난 무언가를 간절히 비워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건축을 감정적으로 멀리 하고 싶고, 과거에 건축을 배웠던 방식도 나에게서 떼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앞을 보고 달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만 그런 태도를 갖고 있는 게 좀 외로웠고, 또 한 편으로는 두려웠다. 다 비웠는데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을까 봐. 캄캄한 공허함만 남을까 봐. 그래서 나는 수업이 끝난 뒤에 교수님께 가서 여쭈었다. 노자가 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인지 아니면 ‘비워내는 행위’인지. 교수님께서는 노자는 무언가 특정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기 생각에 노자는 이 세상 사람들이 자꾸 뭔가를 지나치게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비워내라고 말한 것이지, 이 세상 사람들이 자꾸 자기를 비우려는 사람들이었다면 채우라고 말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비워내는 행위’이고, 그러기 위해서 일단은 ‘무’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무’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게 끝은 아닐 거다. 비워내는 시간이 있으면, 다음에 또 새로운 것을 채우는 시간도 있을 거다. 희망을 갖기로 했다.

 

그 학기 설계 과제는 낡은 건물을 새로이 리노베이션하는 것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자기가 설계할 건물을 직접 정할 수 있었다. 나는 나란히 선 세 개의 오래된 3층짜리 다세대주택을 골랐다. 세 개의 건물은 블록 한 가운데에 숨어 있었다. 서측 도로에서 좁은 길로 들어간 다음 한 층 정도 높이의 계단을 올라야 건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고, 건물의 동쪽에는 마당에 골동품이 잔뜩 쌓여 있는 낡은 1층짜리 집 하나가 딱 붙어 있고, 그 집 앞에 동측 도로가 면해 있었다. 나는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2,3층은 그대로 주거로 두고, 1층은 상업 및 공공 시설로 바꾸어서 외부의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고 싶었다. 어차피 1층은 주거로 쓰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용도에 맞게 벽돌로 된 폐쇄적인 벽은 열린 느낌으로 바꾸고, 창도 새로 디자인했다. 그리고 동측에 있는 낡은 집을 헐어서 넓은 마당을 만들고, 서측 골목에 면한 건물들을 상업시설로 바꾸어서 서측 도로와 동측 도로를 이어주는 새로운 생기 있는 흐름을 만들고자 했다. ‘무언가 새로운 게 흘러 들어올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을 마련한다’, 거기까지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이 건물의 용도를 더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그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더 구체적인 색깔과 내용을 넣는 것이 저어되었다. 이 이상 뭔가를 주장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걸 꼭 내가 정해줘야 하는 것일까, 거기 사는 사람들이 혹은 그곳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면 안 되는 것일까, 답을 끝까지 내지 않고 여기서부터는 그냥 공란으로 비워두면 안 되는 걸까. 무책임한 태도였을라나, 잘 모르겠다. 난 프로젝트의 제목을 流(흐를 류)라 붙였다. 나는 그저 비우고, 무언가가 그곳을 저절로 흐르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건물처럼 내 마음의 벽도 트였으면, 하고 속으로 바랬던 것 같다. 무언가가 막힌 벽을 터주었으면 좋겠다, 내 속을 꽉 채우고 있는 불순한 것들이 떠내려갔으면 좋겠다, 그 틈으로 새로운 무언가가 흘러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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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년 동안 이런 저런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온 탓인지, 학교와의 연결이 조금 느슨해졌다. 교환학생 가기 전에는 이러나 저러나 학교라는 세상이 내 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학교는 내 일부에 불과했다. 물론 나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여전히 좋아했고, 학교는 내 일상에 어느 정도의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는 것도 즐거웠고, 마음이 가는 수업도 몇 개 있었고, 예전만큼 온 힘을 다하지는 않아도 설계에 나름대로 내 생각을 조금씩 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학교라는 세상에 완전히 몰입이 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학교가 나의 하루하루에 너무 많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학교 사람들과 만나서 노는 건 내가 그러고 싶을 때만 그렇게 했고, 과제도 지나치게 많이 내준다 싶으면 내가 너무 힘들지 않도록 조절해서 대충 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게 갑갑하면 화장실 가는 척하고 슬쩍 나와서 딴짓을 하기도 했고, 예전보다 캠퍼스를 거닐거나 도서관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기 위해 혼자 카페에 가는 날이 많아졌고, 집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취미도 생겼다. 학교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니, 시간적으로 많이 여유로워졌다. 나는 이 여유가 좋았다. 건축을 열심히 할 때 느꼈던 성취감보다, 여유가 주는 행복감이 더 좋았다. 성취감의 굴레에서 벗어나 여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 기뻤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여유로운 상태를 스스로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 나름 뿌듯했다.

 

학교에 대한 소속감이 옅어지자,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학교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교 초반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몇 학번이고, 몇 살이고, 어떤 사람들과 친하고, 뭘 잘하는 사람인지, 그런 걸로 사람을 파악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이 평소에 혼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고, 언제 행복을 느끼고 어떨 때 마음이 아프고 외로워지는지가 궁금했다. 누구랑이든 좋으니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일단 학교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내밀하고 여린 부분을 드러내길 꺼리는 것 같았다. 나 스스로도 학교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어서 완전히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대화를 시도해보기에, 학교처럼 공적이고 밝은 장소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술자리에도 몇 번 가보았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을 잘 못 마셔서 술자리에 잘 가지 않는 편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서로 속얘기를 한다고들 하니까 진짜 그런지 궁금했던 것 같다. 술집이, 술이, 우리로 하여금 정말 속을 드러내게 해주는 걸까. 하지만 아무래도 신촌의 흔한 술자리 분위기는 나랑 딱히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낮에 나오지 않는 속얘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말을 건넨다기보다는 술에 기대어서 참고 있었던 무언가를 나오는 대로 서로 내뱉는 느낌에 가까웠는데, 그건 내가 느끼기에 대화가 아니라 그냥 토로 같았다. 내가 술이랑 잘 안 맞는 건가 싶기도 했다. 체질적으로도 술이 안 받는 것도 있지만, 나는 남한테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은 있어도 스스로에게 숨기는 감정은 없는 편이라 내 감정에 가 닿는데 술을 필요로 하는 심리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감정에 가 닿자마자 앞에 있는 사람한테 바로 표출해서 풀어버리는 것도 내가 원하는 감정 교류 방식은 아닌 것 같았다. 감정적인 이야기가 필터링 없이 나오다 보니 누군가에 대한 뒷담화가 시작되면 순식간에 이야기에 살이 붙어 덩어리가 커져버리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불편했다. 다시 점점 술자리를 찾지 않게 되었다. 나는 좀 더 제정신에서, 차분하게, 서로에게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똑바로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그런 대화를 원했다. 나는 학교에서든 술자리에서든 ‘저 사람이랑 조금 더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으면 따로 연락해서 둘이 만나자 했다. 응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응해주는 사람과는 카페에 가거나 공원 같은 곳을 같이 걸으면서,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평소에 세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람들한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언제 견딜 수 없이 마음이 힘들어지는지….

 

나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대해보면서, 사람마다 자신의 속얘기를 할 때 쓰는 표정이나 말투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저마다 드러낼 수 있는 부분과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다름은, 저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두려움의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얘기를 하다 보면 상대 쪽에서 ‘나 여기서부터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고 선을 긋는 순간이 있다. 아주 겉에서부터 바로 선을 긋고 밀쳐내서 속얘기 자체가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과는 만남이 잘 이어지지 않는다), 적당한 선이 어디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 자기가 알아서 그 바깥쪽에 있는 얘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이랑은 관계가 깊어지지는 않아도 비교적 오래 지속된다), 선을 긋지 않고 오히려 나를 자기 마음 속 엄청 깊은 곳까지 끌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과는 연결이 한 순간에 확 깊어진다). 적당한 선이 어딘지 아는 사람들은 그냥 좋은 친구들이었지, 나에게 큰 고민을 안기지는 않았다. 내가 그때 관심을 가졌던 건 날 밀쳐내는 사람들과 끌어당기는 사람들이었다. 속얘기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왜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닫는 것인지 고민했다. 그들은 마치 내가 자기한테 상처를 줄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한테 정말 그들에게 상처를 줄 만한 사람인 걸까 생각하게 됐다. 나를 자기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사람을 만나면, 조금 두렵긴 하지만 기꺼이 그들의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그들의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내 마음의 벽이 건드려지거나 깨질 수 있을지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유 모를 밀고 당김 속에 나를 내맡김으로써, 내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더 깊게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전에 나는 그런 관계의 역동 속에 나를 들여놓지 않으려고 했었다. 불안해 보이기도 했고, 괜히 발을 들였다가 마음을 다치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저절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혹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아서 편하고 안심되는 사람들하고만 가까이 지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변화를 원했다. 나를 변화시켜줄 새로운 흐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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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에 보이지 않는 단단하고 투명한 유리관이 모든 사람들의 몸을 감싸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유리관은 생각이나 말, 과거, 믿음, 상처, 자존심, 주워 들은 이야기, 학습된 표정, 등의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우리의 연약하고 여린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준다. 아마도 저마다 재료의 종류나 성질이 조금씩 다를 것이고, 그 결과 그 크기나, 두께나, 투명한 정도 같은 것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눈에 그런 차이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직접 부딪쳐보기 전에는 내 유리관이 어떤 모양인지도 알 수 없고, 상대방의 유리관의 정체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없다. 알고 싶지 않다면 알지 않는 쪽을 택할 수도 있다. 아무와도 부딪치지 않으면 되니까.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비좁은 세상에 부대껴 살다 보면, 충돌은 결국 발생하기 마련이라. 부딪침은 우연한 마주침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이상한 끌림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내가 누군가의 눈빛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 사람의 딱딱한 유리관이 나를 툭 하고 튕겨내면, 내 유리관에 금이 간다. 반대로 누군가가 나에게 이끌려서 다가오는데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내 유리관이 그 사람을 툭 하고 밀칠 때도 내 유리관에 금이 간다. 금이 갔을 때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균열을 그대로 놔둘지, 아니면 열심히 메우고 고쳐서 다시 광택이 도는 튼튼하고 두꺼운 유리관으로 되돌려놓을지. 그때 난 내가 어떤 유리관 속에 갇혀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것에 흠집을 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여기저기에 조금씩 부딪치고 다녔고, 금이 가고 깨져도 메우지 않고 방치했다. 깨뜨리고 또 깨뜨렸다. 어디까지 깨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유리관 속에 대체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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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복학한 후에 콤플렉스가 하나 생겼다. 나는 손글씨를 쓸 때나 손그림을 그릴 때 ‘인쇄한 것 같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손글씨가 아니라 컴퓨터 폰트같고, 손그림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 같다는 거다. 손놀림이 지나칠 정도로 정확하고 꼼꼼한 편이어서 그렇다. 어릴 때는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어투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창작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게 과연 장점인가 하는 의문에 빠졌다. 나의 그런 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나서부터, 나는 다른 몇몇 사람들이 스케치북에 글씨를 막 휘갈기거나 그림을 대충대충 끄적거릴 때 그 손짓에 슬쩍 슬쩍 눈길이 갔다.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움직임에서 나에게 없는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글씨나 그림, 모형에 대해서 ‘왜 이렇게 깔끔해’, ‘컴퓨터 같다’, ‘기계 같다’ 이런 감상을 던질 때면,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덜 깔끔하고, 덜 깨끗하고, 덜 다듬어진, 더 자연스럽고, 더 편안하고, 더 다가가는, 그런 표현을 나도 하고 싶은데….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 나의 큰 특징이자 한계인 것 같다고 인식하고 나자, 글씨, 그림, 모형뿐만 아니라 내가 찍은 사진을 볼 때도 그런 면이 보였다. 불편했다. 뭔가, 자연스러움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교환학생 때 그토록 공들여 찍은 사진들을 꺼내보다가 돌연 회의감에 빠졌었다. 예쁘게 알록달록한 건물들의 모습이 담긴 포르투 사진이었다. 잘 찍은 사진이었다. 구도도 적절했고, 색감도 좋았다. 하지만 그 완벽한 구도와 색감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저 장소에 있었을 때 기분을, 느낌을, 그때 했던 생각을, 이 사진을 보고 누군가가 느낄 수 있을까. 아니, 그 사진은 그 모든 불완전하고 자잘하고 어지러운 조각들을 빈틈없는 시각적 완성도 뒤로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사진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이었다.

 

내가 왜 시각적인 조화와 안정감, 완성도 같은 것에 집착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면이 답답했다. 그림, 사진, 이미지, 시각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모든 수단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졌다. 그래서 자연히 글을 찾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글에는 형태나 모양이 없었다. 그러니 시각적 완성도를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그 점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그제까지 책을 그리 많이 읽은 편도 아니었고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문장이나 문단의 완성도에 대한 감도 없는 상태였다.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을 때에도, 떠오르는 내 느낌을 글로 적어 내릴 때에도, ‘잘 쓴 글이어야 한다’, ‘완성도 있는 글이어야 한다’, ‘프로페셔널해야 한다’ 따위의 생각이 끼어들어서 방해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서점을 돌아다니며 자기한테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정을 다듬지 않고 단숨에 써 내린 듯한 글을 찾으려 했고, 나 또한 내 안에서 불현듯 흘러나오는 감정들을 글이라는 그릇에 고스란히 받아낼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러다 황경신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고 문장 몇 개를 읽었는데, 평소에 느끼는 정서가 나와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끌렸다. 카페에서 혼자 이분의 에세이를 읽은 날이 많았다. 글을 읽다가 내 속의 감정이 툭 건드려지면, 그 감정을 붙잡고 핸드폰으로 일기장에 짧은 문장들을 적어 내리곤 했다.           

 

어쩌면 너는

네 인생에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난 거라고 생각하지

아직 여름이 한창이지만

너의 마음은 여태 겪어본 적 없는

가을 언저리를 떠돌기도 하고

한겨울의 거리에 내몰린 기분이 된 적도 있었을 거야

뼛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잊기 위해

일부러 큰소리로 웃거나 소리를 지르는 너를 본 사람도

아마 한두 명쯤은 있었겠지

 

어쩌면 너는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자주 변한다는 생각과

또 어떤 것들은 생이 끝날 때까지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절망이라는 벼랑에 서서

무구하고 잔인한 바다를 내려다보았을지도 몰라

그러나 단 하나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어

조금만 더 걸어보자고

조금만 더 움직여보자고 스스로를 부추기며

한숨 같은 심호흡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 거야

 

어쩌면 너는

너무 오랫동안 사랑을 기다려왔다고 중얼거리는 밤을

수없이 보냈을 테지

가까이 끌어다 곁에 두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꽃이 피고 또 지는 것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또 불어가는 것처럼

네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스르르 시들어가는 그 감정을

미처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겠지

 

어쩌면 너는

성급하고 체할 것 같은 복잡한 관계로부터 달아나

홀로 겨울의 심장에 이르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

응시할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사랑을 향해

나쁜 말을 퍼부으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건

사랑이 그만큼 너에게 무겁기 때문이야

네가 하필이면 그런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어쩌면 너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남몰래 사랑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걸지도 몰라

불면의 밤들을 고스란히 통과하고

유혹의 눈웃음을 외면하고

섣불리 심장을 꺼내 보이지 않았으며

 

모든 옳은 것들에 대한 존경과

모든 영원한 것들에 대한 경외를

한시도 멈추지 않았으니까

 

네가 원하는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을 알지 못하여

너는 온 세상의 모퉁이를 서성이지

그러나 정말로 이상하게도

네가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의 얼굴은

두서없이 흔적 없이 서둘러 사라져버리고 말지

그때 너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생각할 거야

 

그저 이 자리에 가만히 서서

사랑을 기다리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 그런 이유로

나는 간혹 너의 눈빛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감추고 있는 깊은 우물을 발견하지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우물은

무척이나 검고 푸르러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밤과 같아

 

그리고 아주 가끔

예기치 않은 바람에 의해

섬세하고 불안한 물결이 갈라질 때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험한지

너는 결코 모르고 있을 거야

 

그렇게 너는

네 인생에서 아직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을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그러하듯이

 

어쩌면 너는

(「밤 열한 시」, 황경신, 소담출판사, 2013 中 )

 

그렇게 나는 일기가 아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딱히 보여줄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글은 그냥 내게 품이 넓은 친구 같은 거였다. 내가 원하는 대화를 어느 누구와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글을 쓰면, 육체가 없는 상상 속의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네가 지금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고 이해하기 싫어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해도, 넌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얼마든지 더 얘기해도 돼’, 하고.

 

혼자서 시작했던 게 또 하나 있다. 노래였다. 노래를 언제 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 지금 당장 밖으로 표현해버리고 싶은 감정이 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갑갑할 때, 어느 날부터인가 집에 와서 혼자 노래를 부르곤 했던 것 같다. 당시 언니랑 둘이 살았는데 언니가 집에 없을 때만 불렀다. 보는 사람이 없고 나 스스로도 눈을 감아야 내가 하고 싶은 노래가 조금씩 나오는 것 같았다. 난 노래를 잘하지는 못한다. 몸에 힘도 없고 리듬감도 부족하고, 그때는 고음도 거의 못해서 완곡을 소화할 수 있는 노래가 거의 없었다. 주로 조용하고 잔잔한데 약간의 슬픔이 어려 있는 노래를 골라서 불렀다. 글에 담기는 감정과 노래에 담기는 감정은 조금 달랐다. 글은 과거에 내가 느꼈어야 했는데 충분히 느끼지 않고 지나간 감정들이 올라올 때 그것을 지금에 와서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한, ‘내가 사실은 이런 것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구나’ 하고 나라는 사람을 알아주기 위한 행위인 것 같았다. 반면에 노래는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어’ 하고 몸 밖으로 호소하기 위한 행위인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노래를 할 때, 그냥 말할 때랑은 다른 종류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내가 어쩐지 반가웠고, 새로웠고, 조금씩 더 알아가고 싶었다. 글과 마찬가지로 노래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다. 나는 내 속에 어떤 감정들이 묵혀져 있는지, 그 속에 어떤 마음이 울고 있는지를 혼자서 스스로 느끼고 만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혼자.

 

저 멀리 들려오는 소리

내 맘에 들어올 때까지

늘 간절히 기도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어요

 

나 죽지않을 만큼의 햇살

비를 맞고 커져만 가요

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무도 만져지지 않아요

 

모두들 날 바라보며 내 모습이 아름답다고

주위를 둘러싼 벽 너머 한 마디씩 던지곤 모두 다 뒤돌아가요

 

나를 이렇게 두지 말아요

텅 빈 심장은 얼어붙을 것 같은데

손을 내밀면 문을 열어줘요

 

세상에 섞일 수 있게

섞일 수 있게

 

유리정원 - 루시드 폴

(「4집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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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는 알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 마음 속에도 시간의 무게에 억눌린 가엾은 감정들이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도 여리고 나약하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자그마한 목소리가 숨어 있지 않을까.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그 무거운 감정의 덩어리들을 풀어주고, 감춰진 목소리의 꿈을 들어줄 수는 없는 걸까. 그 무렵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얼굴로부터, 손짓, 몸짓으로부터, 혹은 독특한 분위기로부터, 오로지 그 사람만이 속에 지니고 있는 순수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 말의 내용에는 (내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탁한 것들이 많이 섞여 있었고, 그런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 사람이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가 생긴 습관이 사람을 볼 때 눈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눈은, 눈동자 주위로 아른하게 반짝이는 빛은, 아마도 거짓말을 못할 거라고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종종 그렇게 생각한다. 눈빛이야말로, 사람이 자기 의도대로 절대로 제어할 수 없는 유일한 신체부위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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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1월은 이상한 달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 아무 색깔도 냄새도 없는 냉정한 바람만 쓸쓸하게 거리를 맴돈다. 나무들은 빛깔을 잃었다. 온 세상이 회색빛으로 보인다, 흐린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 아직 추위에 적응하지 못한 몸은 찬바람에 놀라 움츠러들고,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듯하다. 마음은 지나가버린 가을을 아쉬워하고, 다가올 겨울의 잠잠함과 적막함을 두려워하면서, 이유 없는 우울과 권태 속으로 빠져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11월의 날씨를 마주할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그렇다. 그런 와중에 학교에서는 과제가 쏟아지는 시기다. 기말고사 직전이니까. 과제, 과제, 과제…. 모두들 과제를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과제와 마감에 대한 스트레스가 분위기를 짓누르자, 사람들의 눈에서 내가 보았던 빛이 급속도로 흐릿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우울과 권태는 더 깊어지고, 회색빛은 더 짙어졌다. 사람들은 헉헉대며 달리는데, 내 마음은 그들과 함께 뛰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 시간만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창덕궁에 놀러 갔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서. 궁 안 어디, 조금 높은 곳에 올라섰던 것 같다. 겹겹의 지붕들이 눈 밑으로 내려다보였다. 나는 그 지붕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지붕들이 겹쳐져 있는 모양이 내가 자리를 옮김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었다. 숨어 있던 지붕이 솟아나오기도 하고, 보이던 지붕이 다시 가려지기도 하고, 이렇게, 또 저렇게, 지붕들은 내가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여주었다. 그 순간에,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세상 밖의 무언가가 나의 사소한 움직임에 바로 바로 반응해주는 상황 그 자체가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나는 그때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반응해주지 않는다고 느꼈었다. 나는 움직이고 싶어서 혼자서 몸을 뒤틀고 버둥거리는데, 다들 그런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가만히 그 자리에서 버티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열심히 하던 거 계속 열심히 하고, 두려워하던 거 계속 두려워하면서, 그렇게 그냥 살아가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그 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냉랭함을, 꺼림칙한 거리감을 느꼈다.

 

사람들의 무반응은 나를 두렵게 했다. 목소리를 더 키울 자신이 없어졌다. 목소리는 사그라들었고, 내 눈에서도 빛이 스러져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난 생각했다. 이러면 안 된다, 내가 얼마만에, 어떻게 되찾은 감정인데. 그새 나는 마음의 울렁임을 잊어가고 있었다. 감정이 건조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묻혀 다시 딱딱해지고 있었다. 쉴틈없이 주어지는 과제 더미 속에 또다시 짓눌리고 있었고, 지친 사람들의 생기 없는 눈동자를 마주칠 때마다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이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줄 무언가를 찾아서 이곳 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좋아했던 장소를 다시 찾고, 책 속에서 날 사로잡아줄 문장을 찾고, 트랙리스트를 뒤지며 마음 한 가운데로 꽂혀 들어오는 목소리를 찾고…. 마음이 사라지려 할 때마다 어떻게든 기를 쓰고 소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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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어떤 영화를 알게 되었다. 한국 제목은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원제는 <Anesthesia>. 원래 제목이 내용에 더 알맞은 것 같다. ‘Anesthesia’의 뜻은 ‘마취’, ‘무감각증’이다. 영화 속에서 뉴욕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소피(크리스틴 스튜어트 역)는 역겨운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고데기로 자신의 살을 지질 수밖에 없다. 소피는 월터 교수(샘 워터스톤 역)를 찾아와 자신의 괴로운 감정을 토로한다.

 

사람들이 점점 더… 잔인해지는 것 같아요. 말도 못할 정도로. 다들 혈안이 되어 있어요. 돈과 일에만 눈이 멀어서, 어리석게 자만하고 또 만족해요. 말이 안 통해요. 저는 그들과 맞서요. 다 없애버리고 싶어요. 저도 그들과 섞이고 싶어요. 정말 그러고 싶은데요, 이제는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어떻게든 편하게만 살려고 하죠. 어디서 뭘 살까, 뭘 먹을까, 무슨 영화를 볼까, 뭘 하든 그런 식이에요. 그럼 대체 뭐가 남겠어요?

 

이건 게임 같은 거에요. 저는 규칙이 뭔지 못 들었어요. 설령 들었다 해도 규칙을 따르기에 전 역부족이죠. 그래서 트집이나 잡는 거에요. 악의적이 되는 거죠. 저도 형편없는 인간이에요. 아니, 제가 그들보다 더 형편없죠. 그런 제가 너무 싫어요. 정말로 너무 외로워 죽겠어요. 세상은 왜 이렇게 비열해요? 왜 그렇게 무심할까요? 왜 그렇게 이기적이죠? 저는 왜 이럴까요? 저는 이 세상에 맞지 않아요.  

 

영화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Anesthesia)>, 2016

 

이 영화에는 소피와 월터 교수 외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느 가족, 친구, 부부, 무감각증에 걸려서 아픈 사람들과, 아직 무감각증에 걸리지 않아서 아픈 사람들….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또 사랑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고통스러워하고,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고, 바람을 피운다. 영화는 그 모든 이들의 이상한 아픔을 하나 하나 묘사한다. 영화가 끝나갈 때쯤, 월터 교수는 자신의 마지막 강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의 의미가 자체가 와해되는 와중에도 우리를 신의 경지로 이끌려는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시기, 역사상 가장 엄청난 일이 벌어질 21세기 초에, 사상가들이 묻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살아갈 이유가 있는가? 우리는 산업화로 인한 난관에 부딪힐 겁니다. 소외. 혼란. 인구 팽창. 대량 살상…. 우리는 이러한 현실적 제약들 앞에서, 비유로든, 전형적인 예시로든, 실재하는 진리는 없다고 단정지을지도 모릅니다. 영웅담을 찾아봐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태초부터 있어왔던 선과 악, 옳고 그름과 같은 지상의 순리를 거부하고 대신 환각제를 찾죠.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심리학. 테크놀로지. 사라져가는 걸 대체할 시스템은 얼마든지 있어요. 20세기는 나의 세대이자 여러분이 태어난 때이기도 하죠. 많은 이들에겐 희망, 자유, 가능성의 시대였고, 또 누군가에겐 자포자기와 절망의 시대였어요. 가장 인간적인 세기. 니체가 옳았다는 걸 제대로 실감하게 됐죠. 우리는 결국 멋지게, 그러나 가슴 아프게, 혼자입니다. 이런 공허감 속에서 철학은 최악의 경우 구시대의 관심사로 전락하죠.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논의를 제시해온 의미론적이고 자기반성적인 상대주의가 되고 말아요. 하지만 철학은 의미를 잃어버린 자아를 탐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극이 될 만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질문들일까요? 요컨대 이런 거죠. 우리는 대체 왜 사는가?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것인가. 그들은 지금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나 묻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습니다. 다음 세기 여러분의 시대가 오면, 우리는 무엇으로 버틸까요? 터무니 없고 종잡을 수 없는 진리 탐구를 우리는 결국 단념하게 될까요? 윤리? 도덕? 선? 그 자체로는 입증될 수 없는 원리들을, 이제와서 입증할 수 있을까요? 입증이 불가능하다면, 이런 게 다 끝내 무의미인가요? 그냥 다 끝인가요? 우리는 도시를 파괴하고 지구를 돌이킬 수 없게 바꿔요. 전 세계 어디서나 얼굴 보며 얘기도 할 수 있어요. 그런 것들에 빠져 있는 와중에 필요한 곳에 생명력을 불어넣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왜 여전히 인간은 답을 추구해야만 할까요? 필요치 않다고 누차 말하면서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그걸 찾고 싶어합니다. 어둠에 눈을 감은 채 우리는 방황합니다. 과학기술, 의학, 무신론이 우리의 환상을 불사를 때요. 그것들은 전능한 척하지만, 실상은 나약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차 있어서 우리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어요. 이 강의가 끝난다고 해서 이런 난국이 끝나지는 않아요. 계속될 겁니다. 내가 30년 이상을 가르쳤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 같네요.

 

군중에게 속지 마세요. 도저히 소통이 불가하다는 그릇된 믿음이 만연한 시대에, 여러분, 질문을 주저하는 이여, 마음의 빗장을 여세요. 34년간 정말 즐거웠어요. 서로 타인이 되지 맙시다. 서로에게 배운 것을 모른 척하지도 맙시다. 그게 더 중요하죠. 여러분의 전성기는 이제부터예요.

 

영화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Anesthesia)>, 2016

 

그는 마지막 강의를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아내에게 줄 꽃다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강도를 만나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온 사람에게 아내가 오면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양배추를 심고 있을 때 죽음이 날 찾아오길 바란다. 죽음에 무심할 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을 때.” 아내는 나중에 그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완벽하네요.”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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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2월이 되었다. 나는 이번 학기에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글을 통해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느낀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우선 <건축 이론과 실제> 교수님에게 감사하다고 편지를 써서 메일로 보냈다.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강의를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교수님께서 생각하신 것들을 한 문장, 한 문장,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꺼내주셔서 학생의 입장에서도 생각한 것들을 최선을 다해 잘 꺼내놓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말씀 드렸다.

 

그 다음엔 친구 한 명에게 편지를 썼다. 이번 학기 내내 내가 하는 생각과 내가 평소에 느끼는 감정들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해주었던 친구였다. 1학년 때부터 알았지만 성격이 많이 다르고 사람을 사귀는 스타일도 달라서 서로 약간 거리감을 느꼈었는데, 내가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로 각자 사람들에 대해 했던 생각들을 공유하면서 둘만의 이야기를 점점 자주 나누게 되었었다. 그 친구는 학기가 끝나갈 때쯤 나에게, ‘그동안 내가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랑만 만났던 것 같은데, 나랑 다른 너랑 이렇게 얘기를 나눠보고 나서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게 가능하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됐어’ 라고 말했다. 난 그 친구가 그런 생각을 속에만 갖고 있지 않고 나에게 직접 말해줘서 고맙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 또한 그동안 그 친구에 대해 속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표현하지 않았던 감정들을 편지로 써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오르는 대로 내용을 써내려 갔다. 내가 감정 표현을 어려워하는 이유에 대해서, 내가 그 친구만큼 관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나한테는 없는데 그 친구는 갖고 있는 면에 대해 느꼈던 부러움에 대해서, 나와 다른 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저 아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확신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것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와 계속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내 감정의 문을 두드려준 것에 대한 깊은 고마움에 대해서. 긴 편지였다. 나는 그 편지를 쓰면서, 삶의 어느 시점에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서, 나에 대해, 그 사람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수님도, 그 친구도, 편지를 받고 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나는 이 주고받음을 통해서, 작지만 선명한 용기를 얻었다. 마음을 표현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도 이처럼 서로 진심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희망도 잠시, 나는 다시 회색빛 일상으로 빠져들어갔다. 학기가 끝나고, 1월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앞으로도 아무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런 담담하고 무심한 겨울이었다. 나는 그 겨울 속에 가만히 앉아서,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결핍감을 느꼈다. 어느 날부터 나라는 사람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 성격에 대해 매일같이 생각했다. ‘나는 왜 움직이지 못하는 걸까’, ‘움직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나’, ‘무언가 깨부숴야 할 것이 있는데 겁이 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난 대체 뭐가 두려운 거지?’. 가슴 속에 희미한 불빛이 타오르려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난 그것을 위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내 안에서 두 목소리가 싸웠다. 한 목소리는 그 불꽃의 열기를 등에 업고 일상을 뒤엎어버리고 싶어했고, 다른 목소리는 그러면 안 될 것 같다고 겁을 내고 무서워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어떤 틀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집스럽게 단단하고 거대한 틀 속에서, 맴돌고, 또 맴돌며, 쉬지 않고 매일 매일 헛돌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결정되어 버린, 생각의 패턴, 감정의 패턴, 일종의 삶의 패턴들이, 무력하게, 어떠한 방향성도 없이, 그냥 그저 그렇게 반복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틀이 어쩌면 나를 나이게 해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이 틀이 이렇게 생겨먹은 책임은 어쩌면 전적으로 나에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갑갑하기 그지없는 틀을 마구 깨뜨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나인 적이 없었던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고. 그게 안 되면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무작정 흔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나를 뒤흔들어준다면, 아무 대책 없이, 아무 미련 없이, 아무렇게나 흔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삶에 찾아와 온 힘을 다해서 나를 쥐고 흔들어준다 해도, 그 사람도 결국 언젠가 내 곁을 떠날 아득한 타인일 뿐 나는 결국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나는 왜 나로 태어난 걸까, 생각했다. 내가 나라는 사실만으로 하루하루 숨이 무거워졌다. 2월이었다. 뉴욕 행 비행기를 타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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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I believe if there’s any kind of God it wouldn’t be in any of us, not you or me but just this little space in between. If there’s any kind of magic in this world it must be in the attempt of understanding someone sharing something. I know, it’s almost impossible to succeed but who cares really? The answer must be in the attempt.

 

만약에 이 세상에 신 같은 게 정말 있다면, 그건 네 마음 안도 아니고, 내 마음 안도 아니고, 우리 둘 사이의 이 작은 공간 가운데에 있을 거라 믿어. 만약에 이 세상에 마법 같은 것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함께 하고 있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 안에 있을 거야. 알아.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답은, 이해하려는 ‘시도’ 안에 있어.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