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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essay/「결백한 침묵 - 프리퀄」 2019

6.5 / 있는 그대로의, 연약하고, 순수한

2017.02.13

 

#1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지. 너는 다시 또 모래 폭풍을 피하려고 네 도주로의 방향을 바꾸어버린다. 그러면 폭풍도 다시 네가 도망치는 방향으로 또 방향을 바꾸어버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치 날이 새기 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 폭풍은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온, 너와 아무 관계가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 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 뿐이야. 그곳에는 어쩌면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방향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간조차 없어. 거기에는 백골을 분쇄해 놓은 것 같은 하얗고 고운 모래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지. 그런 모래 폭풍을 상상하란 말이야.

 

그리고 물론 너는 실제로 그놈으로부터 빠져나가게 될 거야. 그 맹렬한 모래 폭풍으로부터. 형이상학적이고 상징적인 모래 폭풍을 뚫고 나가야 하는 거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놈은 천 개의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네 생살을 찢게 될 거야. 몇몇 사람들이 그래서 피를 흘리고, 너 자신도 별수 없이 피를 흘리게 될 거야. 뜨겁고 새빨간 피를 너는 두 손으로 받게 될 거야. 그것은 네 피이고 다른 사람들의 피이기도 하지.

 

그리고 그 모래 폭풍이 그쳤을 때, 어떻게 자기가 무사히 빠져나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너는 잘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아니, 정말로 모래 폭풍이 사라져버렸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어 있어.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 폭풍의 의미인 거야.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中

 

#2

뉴욕 행 비행기, 이륙 전

 

오전 10시 21분. 이륙하기 직전이다. 엄마 차를 타고 공항으로 오면서 지는 달과 떠오르는 해를 동시에 보았다.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그러나 마음껏 황홀해하지는 못했다. 새벽녘, 오전 여섯 시 전후는 내가 좀처럼 좋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시간대다. 새벽 하늘만 보면 불안과 외로움이 섞인 이상한 감정이 느껴진다. 차갑고, 쓸쓸하고, 서늘하고, 텅 빈 듯한…. 차가운 공기가 휑한 마음의 구멍을 무심하고도 날카롭게 통과해 지나간다. 중학생 때, 새벽에 잠이 깨면 학교에 너무 가기 싫어서 침대에서 홀로 몸서리를 치곤 했었다. 그 기억 때문일까. 새벽 공기 속에서 차를 타고 달리는데, 과거의 기억들이 조각 조각 차례로 떠올랐다. 낯선 곳에 가기 전 기분 나쁜 긴장에 시달렸던. 중학교 새 학년이 시작되던 날, 대학교 OT에 처음 갔던 날, 교환학생 떠나던 날…. 공항에 도착하자 긴장으로 배가 아파왔다.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지금 내가 긴장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수하물을 부치고, 엄마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엄마와 헤어진 후 여권 검사하고, 보안 검사하고, 면세품 찾고, 정신 없이 시간에 쫓기며 돌아다녔더니 그새 다행히 긴장이 좀 풀린 것 같다.

 

여행을 준비하는 이틀 동안 느꼈다. 나는 계획적인 성향이 짙다. ‘될대로 대라’ 하고 일이 흘러가는 대로 놔두지 못하는 사람 같다. 최소한의 질서를 바란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길 바라면서도,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두려움이 많은 거다. 나는 두려움이 많다.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 속에 내 몸을 미련 없이 내던지지 못한다.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두려움, 체면, 고집, 기대치, 틀, 가치관, 꿈과 이상…. 항상 내려놓고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것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 느낄 때,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답답하다. 

 

#3

뉴욕 행 비행기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그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이 사실로부터 내리는 결론이, 느끼는 감정이 또다시 다르다. 나한테는 이 사실이 슬픔이었다. 나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세상이 다 무너지고 삶의 의미가 모조리 다 사라지는 것 같은 끔찍한 공허감을 경험해야만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소통을 체념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고 있다. 한때 흠잡을 데 없이 선량하고 아름다웠던 두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할지라도 상처투성이인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나는 그게 이토록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당연스러운 것일까. 나는 다른 사람들과 어디가 어떻게 다르길래. ‘어쩔 수 없어’ 하고 등을 돌리는 일이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어쩌면 사람마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싸움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과제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문제, 아무튼, 날 때부터 주어진 삶의 주제 같은 거. 내가 아무리 피하고 또 피해도 나를 따라오는 모래폭풍 같은 거. 내가 나로 태어났기 때문에 떨쳐버릴 수 없는 어떤 것이 있고, 다른 사람 또한 그가 그로 태어났기 때문에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은 나의 주제를 자신의 것만큼 중요하게 여겨줄 수 없고, 나 또한 그 사람만의 싸움터에 함께 입장할 수 없고. 세상 사람들 모두 각자의 개성에 따라, 자기만의 고유한 고통을 홀로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4

뉴욕 행 비행기

 

비행기가 온통 캄캄하다. 승무원들이 창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 한국에서 이륙한 시간이 10시, 미국에 착륙하는 시간도 10시니까 해를 따라 날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창문을 슬쩍 열어보니 하늘이 까맣다. 밤이다. 하늘 위에 붕 떠 있는 밤. 이 밤 속에 혼자 앉아 있다.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자유롭고 외롭다. 무한한 시공간 속에 놓인 나라는 사람이, 너무 연약하고 위태롭게 느껴진다. 정말 나 혼자 뚝 떨어져 존재하는 것 같다. 어둠 속에서 혼자 작은 불빛을 켜놓고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있는데, 정말이지, 내가 최근에 만난 소설 주인공 중에서 가장 외로운 아이가 나온다. 음악이라도 들어야겠다. 정성이 담긴 피아노 소리를 듣고 싶다.

 

#5

뉴욕 행 비행기

 

보기 좋은 것들만 눈앞에 난무하고 보기 싫은 것들은 커튼 뒤로 욱여 넣어진 세상.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둠을 두려워하고, 감정을 두려워하고, 불행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게 더 맞겠다. 쳐다보지조차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어느 날 불현듯 커튼 뒤의 세상을 어쩔 수 없이 목도한다 할지라도 애써 모른 척, 그런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인 척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어둠을 쉽사리 내놓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남들도 나만큼 힘든지 어떤지 알 길이 없어서, 그 짐스러운 것들을 마음의 커튼 뒤로 감추고 숨긴 채, 각자 홀로, 외롭고 또 무겁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난해하다”, 라는 말.

 

보기 싫은 것들을 모두 커튼 뒤로 숨긴 채 살기 시작한 이후로 사람들은 ‘난해하다’라는 말을 남용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예술이 난해해졌다. 커튼 뒤의 것들을 들춰서 보여주려는 예술의 처절한 시도는 사람들에게 어렵고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에게 ‘난해하다’ 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또다시 커튼 뒤로, 집어넣어버리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예술을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이는 사람들이 삶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버렸음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예술도 사람들을 이해시키길 일찌감치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예술과 사람이 서로 멀다. 언제부터 사이가 틀어진 것일까. 예술이 먼저 변한 걸까, 사람이 먼저 변한 걸까. 누가 누구를 먼저 거부한 것일까. 쌍방과실일까.

 

#6

뉴욕 행 비행기

 

내가 느끼는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애써 이해 받으려 하는 게 되려 고통이 된다면, 창작을 해야 하는 걸까? 소설, 작곡, 가사, 그림….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이 미친 듯이 갑갑한 감정으로라면 당장 뭐라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7

뉴욕 행 비행기

 

나가고 싶다…. 여기서 나가고 싶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혼자 있은 지 11시간 반째다.

 

#8

뉴욕 행 비행기

 

한 시간 반 남았다. 이제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온다. 얼마 만에 보는 하늘색인지 모르겠다. 좀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아니 정상이라기보다, 일상의 상태로 돌아왔다. 어둠 속에서의 14시간, 거의 무슨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음 속 저 깊숙하고 캄캄한 곳까지…. 오늘은 숙소 도착하자마자 좀 쉬어야겠다. 산책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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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4

 

#1

숙소

 

도착해서 바로 잠들어서 10시간이나 자버렸다. 지금은 새벽 2시 20분이다. 위 침대에서 코고는 소리, 옆 침대에서는 이따금씩 숨을 내뱉는 소리, 시계 째깍거리는 소리, 바깥에서는 자동차 달리는 소리, 외국 세제 냄새, 입에 텁텁하게 남은 베이글 맛. 지금은 혼자 핸드폰 불빛에 의존해서 책을 읽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는 문장 몇 개만 가지고도 고독감을 너무 생생하게 불러일으킨다. 지금 느껴지는 고독감은 비행기에서 느낀 것만큼 기분 나쁜 종류는 아니다. 고요하고 잠잠하다. 침대가 따뜻해서 그런가. 하늘 속이 아니라 땅 위라 그런가. 어쨌든 간에 저 밑바닥에 있는 공포스러운 외로움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

숙소

 

결국 밤을 꼴딱 새버렸다. 「해변의 카프카」 가져오기를 잘한 것 같다. 혼자 여행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자주 묘사되어 나온다. 익숙한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낯선 것이 주는 기막힌 고독감, 막막한 무력감,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 같은 거. 혼자 여행할 때만 느껴지는 고독감이 있다. 모든 사람, 모든 장소, 모든 사회, 나라는 사람을 지탱해주고 있던 모든 연결끈이 갑자기 모조리 뚝 끊어져버린 느낌. 나 자신이 한없이 나약하고 무력하고, 아무 힘도 영향력도 없는 것 같은 기분. 그리고, 그때 비로소 생기는 용기….

 

#3

모마(MOMA)

 

세잔의 그림은 따뜻하게 쓸쓸하고, 좀 인간적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내가 느끼기에는 온기가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뭉크의 그림은 차갑게 고독하고, 격렬하게 스산하다. 으스스하고 어둡지만, 그 안에 숨겨진 처절함 같은 것이 마음을 끈다. 마크 로스코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그는 색으로 말을 한다. 색으로 무언가를 절실하게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지금은 마티스의 <Dance> 앞에 앉아 있는데, 마티스는 뭐랄까, 자유롭고 싶어하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여리고 불안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저 그림 안의 사람들도 신이 나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조심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욕구가 불완전하게, 충분치 않게, 그래서 조금 비뚤게 분출되고 있는 느낌. 저 사람들에게 왠지 마음이 쓰인다. 아, 르네 마그리트를 깜빡했다. 그 눈! (The False Mirror, 1929) 내가 본 르네 마그리트 그림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렬했다. 칼더는…. 그냥 너무, 음, 순수하게 아름답다. 그냥 이 사람은 타고난 감각이 천재적인 것 같다. 뻔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균형. 몬드리안의 균형보다 덜 경직되고, 더 우아하다. 파울 클레다. 왠지 반갑다. 이 사람 그림에는 어딘가 아이같이 귀여운 구석이 있다. 

 

#4

맨하튼 어딘가

 

뉴욕이라는 도시는 어쩐지 아직 정이 잘 안 붙는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사불란하게 바쁘고 사무적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이 없다. 빠르게 걷고, 또 걷는다. 멈추지 않고, 정신 없이, 표정 없이, 계속 앞으로 걷는다. 편안하게 머무를 곳을 찾기가 어렵다. 어디에 앉아 있어도 좀 불편하다. 빨리 일어나서 나가라고 재촉당하는 것 같다. 모든 곳에 돈의 흔적이 보인다. 은행, 상점, 거대한 간판, 대형 LED 광고, 고급호텔, 대기업, 돈, 돈, 돈…. 돈이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는 것 같다. 내 돈을 뺏어가려고 안달 난 도시 같다. 관광객의 신분으로 와서 그런가. 그나마 미술관에서는 그림을 통해 사람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음 놓고 느려질 수 있는 장소가 그나마 그림 앞과 공원 같다. 뉴욕에는 뭐가 너무 많다.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게 다 안 중요해 보인다. 모든 게 다 금방 사라질 것 같고, 가볍고, 일시적인 것 같다. 생기고, 없어지고, 생기고, 또 없어지고…. 무의미한 것들의 축제, 천국 같다. 여행이 나에게 더 이상 행복을 주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여행에 없는 것 같다. 쇼핑? 사진 찍기? 건축물 보기? 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의 공허감을 잠시 채워주고 지나가는 것들일 뿐이다. 숙소 가서 책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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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5

 

#1

숙소

 

어젯밤 기분이 한껏 안 좋아진 채로 숙소로 돌아왔다. 잠 부족 때문에 피로했던 데다, 터무니 없이 비싼 ATM 수수료와 비좁고 정신 없는 스타벅스 때문에 짜증이 나서. 씻고 일찍 잘 생각이었는데, 같은 숙소에 묵는 스무 살짜리 남자애가 말을 걸더니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한 순간도 끊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해서 다 들어주다가 10시쯤 잠들었다. 그러다가 또 위 침대 사람 코고는 소리 때문에 깨버렸다. 새벽 3시다.

 

스무 살 남자애의 여행기를 듣다보니, 새삼 내가 그동안 참 여행을 많이 했고 그러면서 변했구나 싶었다. 그 아이와 나는 같은 도시에서 너무 다른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뉴욕의 모든 것이 다 재밌고, 새롭고, 신나고, 감동적인 것 같았다. 얘기를 하는 내내 기쁨에 벅차올라 있었다. 너무 좋아서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워 죽겠는 마음, 새로운 경험을 내 힘으로 하나 하나 맛볼 때 성취감, 뿌듯함, 여행을 통해서 마음이 부자가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 그 아이는 여행에 어느 정도 경험치가 쌓인 것 같아 우쭐해졌는지 나에게 엄청 많은 조언을 해줬다. 여기 가봐라, 저기 가봐라, 피곤하다고 그렇게 일찍 자버리는 거 시간이 아깝지 않냐, 뮤지컬도 꼭 보고, 뉴욕 필하모니도 꼭 보라고, 진짜 말이 많았다. 귀찮기도 한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처음 유럽여행을 했을 때 내 모습이 비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순수한 흥분을 무시하고 자버리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나도 그때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답게만 보이고 하루 하루 꿈에 부풀었는데, 지금은 담담하고 초연하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한다 해도 나는 그냥 나지 싶다. 그때가 더 나은지, 지금이 더 나은지, 기분은 확실히 그때가 더 좋았던 것 같은데. 나는 이제 그런 유의 흥분과 설렘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상실감 같은 것도 있다. 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곳에 행복이 있을 거야’ 하는 희망을 더 이상 품지 못하게 된 것 같아서. 도피처를 잃은 느낌. 궁지에 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망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해봤고, 무언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찾은 장소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진짜 행복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지루하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현실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싸워나가면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마음을 무의 상태로 두려고 한다. 텅 빈 구멍을 채워 넣을 뭔가를 일부러 찾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것들, 어제 몇몇 그림들이 그래 주었듯이….

 

#2

맨하튼 어딘가

 

늘 세상 밖으로 눈이 향했다. 나를 그 누구와도 다르게 만들어줄 그 무언가를 밖에서 찾았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내 기억 안에 차곡차곡 모으려고 했다. 아름다운 장소, 아름다운 경험, 아름다운 감정, 아름다운 사람, 내 눈으로 기어코 찾아낸 아름다운 것들과 나라는 평범한 사람이 한 데 뭉쳐 하나로 완성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렇게 하면 특별하고 소중하며,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무언가가, 나라는 사람 안에서 승화되어 나와 샘솟아줄지도 모른다고,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새어나갈까 봐 두려웠다. 기억이. 추억이. 나와 아름다운 것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질까, 내 살점이라 악착같이 믿고 있는 것들이 몸에서 떨어져 나갈까. 나보고 아름다운 것들과 갈라서라는 말은, 곧 나 자신이기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눈을 안으로 뜬다. 나 아닌 것들과 억지로 뭉쳐놓아서 잘 보이지 않던 나의 맨 모습을 본다. 옷을 한 겹 한 겹 벗길 때마다 상처받기 쉬운 속살이 드러난다.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 어리고 연약하고 겁이 많아 잘 우는 아이. 무겁고 불편한 옷을 벗어 던지고 이 나약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 싶다. 가끔은 추울 것이고, 또 가끔은 날카로운 조각이 발에 밟혀 아프기도 하겠지만, 날 지키겠답시고 맞지 않는 옷을 무겁도록 버겁도록 꾸역꾸역 입고 다니는 것보다야 참을 만할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나일 수는 없다. 연결은 끊어졌다. 세상은 세상이고, 나는 나다. 여행이 재미 없어졌다.

 

#3

맨하튼 어딘가

 

계속 안 좋은 기분이 맴돈다. 내가 나와 동일시하던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되어 버렸다. 건물을 봐도, 미술을 봐도, 사진을 찍어도, 예전처럼 가슴이 채워지지 않는다. 홀로 붕 떠 있는 것 같다. 어떤 것과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붕 떠 있다. 불안하다. 나를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막아주고 있었던 것들을 잃어버렸다.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것들로부터 더 이상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겠다. 모든 것이 다 외부에 있다. 정말 모든 것이 다 타인이고 외부다.

 

#4

맨하튼 어딘가

 

길을 잃은 것 같다.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을 놓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가이드라인이 없다.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 거리를 걷고, 하이라인 파크에도 가고, 뉴뮤지엄에도 가고, 서점에도 갔지만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내 마음을 잡아끌지 못했다. ‘내 것’이 없었다. 내 손에 붙잡아지는 것이 없었다. 그것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고, 나도 그냥 내 자리에 있다.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이드라인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알고 싶지만 알아도 소용 없을 것이다. 그 사람들과 나는 다르니까.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방식은 나밖에 알아낼 수 없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해주지 못한다. 아이의 상태로 돌아간 것 같다. 사람들 틈에 혼자 맨 몸으로 우뚝 서 있는 기분이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마음에 흔들리고, 눈물이 날 것 같고, 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다. 불안, 외로움, 슬픔, 고독,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느낌, 내 문제는 나밖에 해결할 수 없다는, 오싹하고 무거운 책임감. 나는 다시 새롭게 강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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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6

 

#1

숙소

 

아침 먹고 졸려서 다시 잠들었다. 11시가 다 되어서 잠이 깼다. 다른 방에서 여자 둘이 나갈 준비를 하면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시간에 잠이 깬 것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깊이 잤는지 히터랑 햇빛 때문에 땀이 흠뻑 났는데도 움직이지도 않고 잤다. 여자들이 나가는 소리를 확인하고 씻으러 욕실로 갔다. 욕조 옆 창문에서 햇빛이 가득 들어와 몸을 감싸 안아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따라 온수도 콸콸 잘 나왔다. 햇빛과 물이 몸에 동시에 닿는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청결해지고 순수해지는 느낌이 었다. 잠시나마 투명해지는 기분.

 

#2

숙소에서 맨하튼으로 가는 길

 

나갈 준비를 하는데 일하시는 한국인 여자분이 들어오셔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활달하고 밝은 분이었다. 전문대에 다니다가 자격지심이 들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고 하셨다. 그 분은 내가 좋은 대학교에 다니는 게 부럽다고 하셨지만, 나는 그 분이 부러웠다. 친구도 다양하게 많은 것 같고,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것 같고, 씩씩하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이다. 잠깐의 대화가 고독에 빠져 있었던 나에게 활기와 위안을 주었다. 사람이 주는 힘이란. 살아있는 사람, 살아가는 사람이 줄 수 있는 힘이란.

 

#2

노이에 갤러리 (Nueu Gallery)

 

클림트와 에곤 쉴레.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오스트리아 화가. 자꾸 함께 보게 된다. 둘에게 받는 인상이 섞여서 기억되는 것 같다. 다르지만 유사하다. 둘 다 오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뭐라 표현을 잘 못하겠다. 내 안에 있는 뒤틀림, 일그러짐, 소극적인 광기가 슬며시 눈을 뜨는 느낌인데. 들추기 두려울 수도 있는, 혹은 들여다보기 불쾌할 수도 있는 내면의 어떤 부분을 이들은 과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건드린다. 이상하고 기괴하지만, 그 모습이 또 묘하게 균형 있고 아름답기 때문인 것 같다. 이끌려버리는 것이다.

 

다만 클림트는 뭐랄까, 꿈속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것 같고 에곤 쉴레는 더 바깥으로 나오고 싶어한다. 클림트의 그림에 담긴 영혼은 액자 안에서 스스로가 스스로에 의해 뒤엉켜 있는 느낌이라면, 에곤 쉴레의 그림에 담긴 영혼은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다른 누군가와 뒤엉키고자 하는 것 같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클림트의 그림은 스스로에게 말을 걸고 있고, 에곤 쉴레의 그림은 나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건다. 클림트의 그림은 왠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고, 에곤 쉴레의 그림은 가까이 가서 그 마음을 만져줘야만 할 것 같다.

 

이 안에 있으니 유럽에 온 것 같다. 오스트리아 화가들의 특유의 분위기, 유럽풍의 벽지와 가구…. 내가 화가라면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어떤 그림이 내 내면을 반영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는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유명한 화가들도 처음엔 다른 화가들의 화풍을 따라해보다가, 점차 자신에게 맞는, 자신만이 그려낼 수 있는, 자신의 영혼에 어울리는 고유한 스타일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겪는다. 찾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모방만 하다가 그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 창작을 하고 싶다. 내 안에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 있는 감정들을 위한 출구를 찾아내고 싶다. 

 

그림을 볼 때 전보다 마음에 많이 와 닿는 것 같다. 마음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형태도, 색채도 없는, 그래서 그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는 내면의 무언가를,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밖으로 끌어내어 부피와 무게를 지닌 물질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금의 내가 이미 죽어버린 사람의 마음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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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7

 

#1

숙소

 

여행을 하다보면 나 자신이 문득 처량하고 초라하게 여겨지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좋아지려고 온 건데,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기분을 느끼려고, 돈 써서 온 건데, 하고 억울해지는 순간들. 비행기에서 내려 화장기 하나 없는 꾀죄죄한 얼굴로 커다란 짐을 끌고 다니느라 땀 범벅이 되기도 하고, 안 그래도 만만하게 보여서 도둑을 맞거나 나쁜 일이 생길까 긴장해서 경직되어 있는데 동양인 여자애라고 식당이나 가게에서 대놓고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자전거 도로 위에 우뚝하니 서 있다가 야유나 비난을 받기도 하고, 돈이 아끼겠답시고 끼니를 굶거나 온갖 종류의 수많은 관광객들 속에 파묻혀 하염없이 긴 줄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 많은 돈과 시간을 소모한 대가로 내가 과연 이 여행에서 얻은 것이 있는가 하는 회의감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마음 붙일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아무런 가이드라인 없이 낯선 곳에 내던져져 있다는 느낌에 사무치게 불안하고 외로워지면서,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소파에 누워 있던 지루한 나날들이 그리워지곤 하는 것이다.

 

#2

센트럴 파크

 

아까 호숫가를 걸을 때, 잠시 생각이 씻겨나갔다. 자연에는 언어가 없다. 자연은 나를 언어에서 해방시켜준다. 장면을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멈추었다. 그러자 순간 모든 것이 그 자체로 보였다. 빛과 바람과 소리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그것들을 나누어 파악하지 않았다. 그냥 하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이름 붙이지 않고 보았고, 귀에 들리는 것을 이름 붙이지 않고 들었다. 이곳이 뉴욕이라는 사실도, 맨하튼 안의 센트럴 파크라는 사실도 순간 잊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그 느낌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 순간 다시 언어의 세계로 돌아왓다. 다시 모든 것들의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수는 호수로 보이고, 새 소리는 새 소리로 들리고, 여기는 다시 뉴욕이었다. 다시 언어에 갇혔다.

 

#3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오늘도 창을 통해 햇빛이 가득 들어왔다. 샤워를 하는데 몸의 감촉이 확 살아났다. 햇빛의 격렬한 온기와 수돗물의 청명한 쾌활함이 몸의 생기를 깨워주는 것 같았다. 나중에 욕조 옆에 큰 창문이 나 있는 집에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창문이 없는 곳에서 씻는 것과 창문이 있는 곳에서 씻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매일 아침 햇빛 아래서 몸을 씻을 수 있는 삶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까 공원을 걸으면서도 잠든 몸이 깨어나려고 꿈틀대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머리나 가슴 말고, 몸으로 세상을 보는 법, 몸으로 세계를 받아들이는 법. 자연에게서 배우는 것 같다. 강이나, 바다나, 바람이나, 숲이나, 태양으로부터. 여행을 할 때 몸의 감각을 되찾곤 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일상을 살면 도로 둔감해진다.

 

지금은 구겐하임이다. 사진으로만 실컷 보던 건물에 직접 들어와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티켓은 샀고, 입장하기 전. 로비에 앉아서 일기를 쓰는 중이다. 미술관 치고 다소 소란하다. 모든 층이 다 뚫려 있어 그런 듯하다.

 

#4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에 온통 울려 퍼지는 소음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된다. 나선형 슬로프는 방향성이 너무 분명해서 위에 서 있자니 경사를 따라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림에 눈을 붙이기가, 제대로 관계 맺기가 힘들다.

 

#5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방금 또 순간 생각이 확 사라졌다. 생각이 사라지자 지속적으로 귀를 때리던 소음이 갑자기 다르게 들렸다. 더 크게 들리는데, 덜 불편했다. 그냥 귀 안으로 스윽 스윽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그냥 별 의미 없는 사물처럼 보였다. 갑자기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림을 사고, 벽에 걸고, 또 그 모습을 보러 오고…. 왜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할까. 나는 여기에 뭘 하러 온 걸까. 저 중엔 그림 안에 자기 영혼을 있는 힘을 다해 담아낸 이도 있을텐데, 그 그림들이 한낱 상품이 되어버린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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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1

숙소

 

매일 코고는 소리로 잠을 방해하던 사람이 드디어 한국에 갔다. 깨어 있을 때 마주친 적이 없어서 그동안 말 한 번 나누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자기한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표가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갔다고 나한테 건네주고 갔다. 짜증이 났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2

숙소에서 맨하튼으로 가는 길

 

오늘 날씨가 좋다. 행복감이 마구 차오른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타인에 의한 행복도 아니고, 나로 인한 행복도 아니고, 그냥 좋은 날씨로 인한 투명하고 순수한 행복. 조건 없는 행복. 자격이 필요치 않은 행복. 그래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행복.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온유한 행복. 천천히 걸으면서 눈을 감고 바람을 느꼈다. 바람에 따스한 봄 기운이 있었다.

 

#3

맨하튼 어딘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침착하게 나와 타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 감정의 나눔이 너무 잦으면, 자꾸 내 기분과 느낌에 의존하여 나에 대해 타인에 대해 주관적인 판단을 내려버린다. 원망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원망하고, 자책하지 않아도 될 일에 자책하고, 냉정하지 못하게, 똑똑하지도 못하게. 가끔씩 시간을 두고 덩어리로 얽힌 속 감정들을 씻어줘야 할 때가 온다. 무언가에 의해 일그러져서, 혹은 무언가에 의해 가려져서, 알아보기 힘들었던 감정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봐주는 일. 뺨을 어루만지며 괜찮다 토닥여주는 일. 그렇게 축축히 고여 있던 눈물을 햇빛에 말린 후 투명하게 맑아진 눈으로 다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일. 삶에서 여행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

 

#4

맨하튼 어딘가

 

스스로 날개를 자르고서는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의 어떤 이를 그리워하며 산다. 아주 옛날에, 기둥에 걸리고 벽에 부딪치는 것이 싫어 날개가 없는 척하기로 하였다. 그저 높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고요히 세상을 관조하며 멀리서 누군가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날개 없이 닿을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어서 멀리까지 마중 나가지는 못한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은 인적이 드문 지극히 평범한 동네여서 쓸데없이 호기심이 가상한 여행자가 아니고서는 내 나뭇가지가 있는 곳까지 오는 이가 드물다. 어느 날, 외롭다는 것을 깨닫는다. 갑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을 기다리기로 한 것인지조차 가물거리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마음의 구멍이 생생하게 느껴질 뿐이다. 날개를 언제 잃어버린 것인지,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있는지, 알고 싶지만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 답답하다. 기다리는 사람이 누군지 얼굴이라도 알면 좋으련만. 조금 더 멀리 가서 멈출 걸, 하고 후회하기는 늦은 것 같기도 하다.     

 

#5

클로이스터스

 

편지를 썼다. 1년 전 같이 여행하던 중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이후에도 1년 내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또다시 상처를 주고받았던 친구에게.

 

#6

리버사이드 파크

 

좋다. 평화롭다. 건물 없이 탁 트여서 숨이 트인다. 길을 찾을 필요도 없다. 하염없이 강을 따라 걸으면 된다. 다른 사람들도 여기서는 도시 안에서처럼 바쁘게 걷지 않는다. 마음이 놓인다.

 

낮과 밤의 경계다. 낮에서 밤으로 갈수록, 세상을 향해 있던 눈이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시야가 축소되고 또 축소되어 나만 남는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남는다. 그래서 밤은 조금 외롭지만, 그래서 반갑기도 하다.

 

여행 오길 잘한 것 같다. 마음이 점차 정화되어가는 것 같다. 오늘은 모자라고 나약한 나를 기꺼이 사랑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그치거나 혼내지 않고.

 

#7

타임스퀘어

 

타임스퀘어의 소란스러움이 여행 초반 때처럼 불편하지 않다. 사람들을 향한 경계심이 옅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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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9

 

#1

숙소

 

여행을 가거나 먼 곳으로 떠날 때마다 나는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될 것을 상상했다. 커피 한 잔과 햇살, 그 옆에 여유로이 앉아 글을 쓰고, 엷은 미소를 띤 채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그때 마침 떠오르는 사람에게 연락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또 글을 쓰고. 두려움도 없고 거리낌도 없이 그저 마음의 자유만이 가득한 나.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 두려움 많은 평범한 나를 자유를 얻은 이상 속의 나로 바꾸는 일을, 나는 시간과 장소에게 맡기려고 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면, 나를 구속했던 익숙한 장소와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면, 내가 저절로 달라지는 줄 알았다. 일상에서 결핍된 것을 일상 속에서 찾을 용기가 없어 여행을 꿈꿨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자유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곳으로 여행을 떠나든 내가 마주하는 것은 또 하나의 구체적인 장소일 뿐이다. 지극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 밝음과 어둠이 자질구레하게 뒤엉킨 채 혼재하는, 또 하나의 적나라한 현실. 나를 또 다른 방식으로 구속하는 또 다른 현실. 자유로운 순간과 낭만적인 장소, 그 속에서 어떤 것에도 구속당하지 않고 글을 쓰는 내 모습이란, 실제 삶과는 영원히 공존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허황된 개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알 것 같다. 나로 하여금 자유로이 글을 쓰게 하는 건,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시간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 나 자신이 스스로 구속을 버리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내가 그 글을 언제 어디서 쓰는지 따위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것.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그저 나오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상태, 나는 그것을, 살던 곳에서 찾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2

숙소에서 맨하튼으로 가는 길

 

오늘은 초여름 같다 싶을 정도로 날이 따뜻하다. 원피스에 가디건만 걸치고 나왔는데 덥다. 오늘도 숙소 주변 강가를 산책했다. 어제보다 더 오래. 좋았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가득하다. 사람들도 추운 날보다 한껏 더 활기차 보인다. 지금과 나만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과 나. 여기와 나. 지금, 여기, 나만 있는데도 외롭지 않고 따스하다. 이 온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햇빛? 계절? 아니면….

 

#3

소호, 안나 수이(Anna Sui)

 

간판이 눈에 띄어서 들어가봤는데, 옷이랑 화장품 모두 생긴 게 너무 예뻐서 홀려버렸다. 옷 욕심이 생긴다….

 

#4

리틀 이탈리

 

이탈리아 거리에서 풍기던 냄새와 비슷하다. 지금 맞은 편 자리에 앉은 가족은 딸에게 이탈리어로 숫자를 가르쳐주고 있다. Siete, Otto, Nove, Dieci….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어쩐지 귀에 꽂히는 이탈리아어가 반갑고, 특유의 정겹고 투박하며 느긋한 분위기가 좋다. 이탈리아에 살 때 그 누구에게도 좀처럼 정을 붙이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 문화에, 그 느낌에, 그 땅에 마음을 붙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와 나 사이에 관계가 생겼다. 내 삶은 이렇게, 때로는 내 의지로,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끊임없이 무언가와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밖에 앉아 밥 먹는 사람들 보는 거, 기분 좋다.

 

#5

어퍼 웨스트 사이드, 스타벅스

 

브루클린에 다녀왔다. 주말인 데다 날씨까지 좋아서, 가족이고 연인이고 다 공원으로 나와 신나게 놀고 있었다. 다시 맨하튼으로 돌아와, 첼시마켓을 지나, 해질녘쯤 하이라인 파크에 잠시 올라갔다 내려왔다. 처음 간 날에는 그렇게 사람이 없더니 오늘은 바글바글했다. 날씨가 좋으니 도시에 활기가 돈다. 동시에 내 여행에도 활기가 돈다. 오늘 오랜만에 사진을 많이 찍은 것 같다. 어쩌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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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

숙소 근처 공원

 

아침 6시 반이다. 새벽에 깨서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하다가 창밖으로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아름다움에 이끌려서 세수도 안 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숙소 근처, 맨해튼이 강 건너로 보이는 공원이다. 이 동네는 밤이랑 낮이랑 새벽이랑 느낌이 다 다르다. 바람이 쌀쌀하고 고요하다. 새 울음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아직 다 자는데 새들만 깬 모양이다. 해가 어서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달은 아직 머리 위에 선명하게 보인다. 새하얀 초승달이다.

 

#2

숙소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해 뜨는 것을 바라보며, 이 정도면 충분한 것이 아닌가, 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도 아니고, 강렬하게 기억될 만한 저릿한 흥분도 아니지만, 이 정도로도, 딱히 모자랄 것은 없지 않은가, 했다. 평생 딱 이 정도의 조용한 기쁨만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인생이 아닐까, 했다.

 

#3

다시 숙소

 

초라하고 평범한 나를 만나고 왔다. 아무도 없는 빈 공터에서의 태양과의 만남은, 내가 입고 있는 모든 옷을 벗어 젖혔다. 내 이름, 가족, 내가 속했던 무수한 사회, 내가 이루어낸 성공, 그동안 관계 맺은 사람들, 그동안 남긴 모든 기록들, 나의 모든 이미지, 나의 모든 과거, 나의 꿈, 그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아까 그 순간만큼은 태양과 나, 둘뿐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나는 세상에 막 태어난 아기 때와 변함없이 작고 초라하고 연약하고 하찮았다. 내가 의지할 것은 오로지 태양의 온기, 그거 하나뿐이었다. 

 

#4

숙소

 

「해변의 카프카」에서 나카타 씨가 죽었다. 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하던 호시노 청년이,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를 듣다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될 것 같다.

 

#5

숙소

 

누군가의 단점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말하다가 불현듯 수치심이 올라오곤 한다. 수치심을 의식하는 순간, 얼굴 근육이 말을 안 듣고 멋대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이상야릇한 불편함을 못 견디고는 곧 그 이야기를 멈추고 만다. 스스로 아는 것이다. 그 사람을 싫어할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그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는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거나 혹은 쌍방 모두에게 있는 것인데, 그 죄를 상대방에게 몽땅 뒤집어씌우고 싶어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동조를 얻어내어 그런 나를 정당화하고 싶어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비겁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문득 알아버리는 것이다.

 

#6

여행하고 와서, 다시 숙소

 

사람이 많은 하루였다. 아침에는 반가운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고, 그런 후에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또래 남자애랑 말을 나누게 되어 맨하튼까지 같이 왔다. 저녁에 버스타는 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낮에는 이탈리아에서 같이 살았던 언니와 만나서 하루종일 같이 다녔다. 뉴욕에서 두 번째 만남이었다. 노이에 갤러리에 갔던 날 저녁에 한 번 만났었다. 언니는 뉴욕에 살고 있었다. 1년쯤 지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는 아까 그 친구를 만나 숙소로 같이 들어왔다. 오는 길에 술을 사와서 같이 마시면서 잠시 이야기도 했다.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 같다. 사람들이 내 마음 속 구멍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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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1

 

#1

링컨 센터 근처 스타벅스

 

링컨 센터 주변. 마음에 든다. 탁 트인 광장, 햇빛, 분수, 물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 그 물에서 풍기는 수영장 냄새. 어릴 때 수영장을 좋아했다는 게 생각난다. 차가운 물이 주는 묘한 따뜻함이 있었다. 차가운 물이 내 몸을 빈틈없이 둘러싸는, 그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링컨 센터 근처 스타벅스다. 뉴욕에 있을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아쉽지는 않다. 딱히 많은 걸 하지는 않았는데 많은 일이 일어난 느낌이다. 캄캄한 비행기에서의 14시간, 스무 살 남자애의 여행기, 여행 둘째 날 느꼈던 상실감, 햇빛 속에서의 아침 샤워, 룸메이트 언니랑 재회, 숙소 앞 산책 중 느꼈던 봄 기운과 설렘, 일출 앞에서 만난 초라한 나, 어제 만나고 이야기한 사람들…. 뭔가가 마음 안에서 넘쳐흐르는데, 무엇인지 모르겠다. 심장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와서 멋대로 내 안을 휘젓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꾸 눈물이 날 것 같다.

 

#2

멧 브로이어 (Met Breuer)

 

Met Breuer에서 Marisa Merz라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다. 오늘 내 마음 상태 때문인지, 마음 안으로 깊이 들어온다. 회화도, 조각도, 하나 하나 담담하게 시선을 끈다. 처음 전시장 안으로 딱 들어왔을 때 마주쳤던 그림, 뭔가 동질감이 느껴져서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금은 작은 분수 모양 조각 앞에 앉아 있다. 가운데의 작은 구멍에서 물방울이 겨우 몇 방울씩 힘없이 솟아 나오고 있다. 힘은 역부족이지만 물이 가고자 하는 방향만큼은 정확하게, 꿋꿋이 위를 향하고 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해 위로 얼마 가지 못하고 평평한 수면 위로 떨어져 셀 수 없는 물 분자들 중 하나가 되어버리고 말지만, 잔잔하던 물에 잠시 파동을 일으킬 정도의 영향은 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다. 감기기도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추운 날 더 돌아다니다가는 진짜 감기에 걸릴 것 같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사진도 정리하고, 짐도 정리하고, 마음도 이래저래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3

숙소

 

오는 길에 홀로 엄청난 폭풍에 휘말렸다. 중요한 매듭이 하나 풀린 것 같다. 여행한 시간은 가장 짧은 날인데, 가장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 하루다.

 

#4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고,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생긴 소년도 아니고, 그리 예쁜 소녀도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 어딘가에는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길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놀랐잖아, 난 줄곧 너를 찾아다녔단 말이야. 네가 믿지 않을지는 몰라도,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라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한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인걸. 모든 것이 모두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대로야. 마치 꿈만 같아"라고 소녀는 소년에게 말한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질리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이야기를 계속한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자신이 100퍼센트의 상대를 찾고, 그 100퍼센트의 상대가 자신을 찾아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 약간의, 극히 사소한 의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좋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이렇게 말한다.

"이봐, 다시 한 번만 시험해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정말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어디선가 다시 만날 게 틀림없어.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대에도 역시 서로가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 알겠어?"

"좋아"라고 소녀는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시험해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였으니까. 그리고 상투적인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희롱하게 된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그해에 유행한 악성 인플루엔자에 걸려 몇 주일간 사경을 헤맨 끝에, 옛날 기억들을 깡그리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어린 시절 D.H.로렌스의 저금통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명하고 참을성 있는 소년, 소녀였기 때문에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다시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우체국에서 속달을 부치거나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75퍼센트의 연애나,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소년은 서른 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4월의 어느 맑은 아침, 소년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하라주쿠의 뒷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가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 간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스쳐 지나간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춘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다.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의 기억의 빛은 너무나도 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만큼 맑지 않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서로를 스쳐 지나, 그대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만다.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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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모래폭풍이 있다. 피하려 피하려 해도 그림자처럼 악착같이 따라오며 시야를 감싸버리는 그런 모래폭풍이 있다. 그 모양과 형태는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 사람들은, 특히 우리 나이 때의 사람들은 더더욱, 자신의 모래폭풍의 정체를 이해하는 일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것까지 이해할 힘이 남지 않는다. 그러니 애먼 사람에게 내가 하는 싸움이 무엇인지 알아달라고 하는 건,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폭풍이 무엇인지 이해해달라고 하는 건, 그리하여 나의 절박함에 공감해달라고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어쩌면 불가능한 요구였던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 속에서 너무 외롭고 불안하니까. 길도 보이지 않고, 목적지도 보이지 않고, 날 이끌어주는 누군가도 없고, 그 속에서 홀로 걷고 또 걷다 보니 지치고 힘이 빠져오는데, 그 사막 안에는 도무지 기대어 쉴 곳이 없으니까. 서로 위로하고 북돋으며 같이 싸워나갈 사람을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네가 걸어온 길이 맞다고, 이제 조금 쉬어도 된다고 말해줄 사람이 나는 필요했던 것이다.

 

#2

 

나는 다른 사람의 모래 폭풍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가능하다면.

 

#3

 

모든 관계의 엇갈림은 언제나 쌍방과실이다. 누가 먼저 도망가기 시작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내게서 거리를 두고자 했다는 것은 내가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고 내가 믿음을 주지 못한 이유는 그 사람 또한 한결같지 못했기 때문이다.

 

#4

뉴욕 필하모니 오픈 리허설, Beethoven’s Symphonies No.7 and 8

 

스무 살 남자애랑 얘기했던 날, 그 아이가 뉴욕 필하모니에 대한 팁을 줬었다. 본 공연을 보려면 비싸지만 돈을 조금만 내면 리허설을 구경할 수 있다는 거. 그걸 보러 왔다. 고급스러운 건물에 들어오니 약간의 허영심이 생기는데, 잠깐 이런 기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나 둘씩 자리가 채워지고 있다. 연주자들은 사복을 입고 자유롭게 연습하고 있다.

 

공연 전 조율하는 소리. 제각각의 악기가 하나의 음을 향해 서로 서로 맞춰나간다. 그 소리가 좋다.

 

소리의 흐름에 나를 맡겼다. 곡을 들으면서 맥락 없이 여러 가지가 마구잡이로 떠올랐던 것 같다. 나, 나의 상처, 내가 상처 줬을 사람, 보고 싶은 사람,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내가 살고 싶은 삶, 미래에 내 곁에 있을 사람, 나의 꿈, 나의 거짓,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것, 그렇게 해서 찾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5

 

어쩌면 우리는 단지 출발점이 다른 것뿐인지도 모른다. 원 가장자리의 각각 다른 지점에 발을 딛고서는,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하여,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아직은 서로가 멀지만, 아직은 가까이 다가서기가 힘들지만, 아직 자기가 딛고 있는 땅에서 발을 떼기가 두렵고 어렵지만, 아직 눈이 어두워 다른 사람들이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겠고, 보이는 거라곤 내가 걸어온 길과 걷고 있는 길뿐이지만, 힘겹게, 힘겹게, 원의 중앙을 향해 걸어나가면서 우리도 모르게 서로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만나는 장애물의 형태도, 넘어서야 하는 언덕의 모양도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래서 외로울 때가 생기고 그래서 잠시 원 바깥으로 물러서고 싶을 때도 생기겠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떼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6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예술은 필요하다. 아직 말을 나눌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술은, 부담스럽지 않게, 도망갈 필요가 없게,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운 방식으로 말을 걸어준다.

 

렌조 피아노 건물은 역시나 실내 느낌이 좋다. 빛이 충분하고 공기는 쾌적하다.

 

오늘은 왠지 빨간색이 끌린다. 빨간색이 들어간 것들.

 

오늘 왠지, 어딘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느낌이 착각이든 순간이든 간에, 기억하고 싶다. 마음에 자국을 남기고 싶다.

 

한 미술관에 충분히 오래 있으니 좋다. 그림들이랑 친해지는 기분도 들고, 그냥 닫을 때까지 여기 있을까 보다.

 

창밖으로 맨해튼 뷰가 훤히 보이는 소파에 앉아 있다. 이 미술관 너무 좋다. 너무, 좋다.

 

앞으로 눈 화장은 안 하고 싶다.

 

/

 

2017.02.23

 

#1

숙소 근처

 

오늘은 맨하튼에 가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마주친 몇몇 사람에게 먼저 눈인사를 했다. 내가 먼저 웃으니 상대방도 웃는다. 그토록 차가워 보이던 표정이 온통 환해진다. 여태 이걸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인사하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벅찬 일이었다.

 

/

 

2017.02.24

 

#1

페리 터미널

 

맨하튼 끝자락에 서서 이 도시에 처음 온 날을 떠올리니 아득하게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불과 일주일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그때의 지금, 내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두려움의 정서가 녹아내린 것 같다. 처음에 조금 무섭더라도 가방끈을 꼭 붙잡고, 뚜벅 뚜벅 걸어다니며 새로운 장소들과 하나 둘씩 관계를 맺어나가면 이렇게 어느 순간 무서울 게 없어진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내가 매력이 없지 않을까, 내 나약하고 못된 면을 들키지 않을까, 방심하고 있으면 자꾸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런 두려움들을 질끈 견디며 한 사람 한 사람 꼬박꼬박 관계를 맺어나가다 보면, 사실 무서워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을 알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혼자 웅크리고 있어봤자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2

배터리 파크

 

관계 속에서 나 자신으로 있는 것. 나 자신으로서 관계하는 것. 일단,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출구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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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5

 

#1

숙소 근처 공원

 

벤치에 누워 있다. 살다가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다시 사람에 지쳐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도시에 다시 와야겠다. 이 도시, 이 숙소, 그대로. 여기서 2주동안 느낀 것들, 나를 바라보려 했던 노력, 알아주고자 했던 마음, 어느 순간 마음이 맑게 개였던 순간에 마주한 눈물과 기쁨을, 다시 되새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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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6

 

#1

숙소

 

오직 나만이 소유한 시간, 나만이 소유한 장소, 나만이 소유한 찰나, 내가 그 무엇에도 훼손되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내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흩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2

 

다시 무거운 노를 저을지

나를 시험하려는 파도

조금은 화난 듯 몰아치며

배를 뒤흔드는 저 바다

 

밤새 준비한 성긴 그물

작은 물고기는 놓칠 수 있게

그런데도 이렇게

좁은 이 배 한가득

채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 모자라지 않도록

그리 넘치지도 않도록

오늘 내 몫은 끝나

집으로 향하는 길

노래 부르며 생각해 보면

 

난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무얼 놓지 못해 주저하는지

 

오늘밤 이렇게도

하루를 마치고

노래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노래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어부가 - 루시드 폴

(「5집 아름다운 날들」中 )

 

#3

숙소에서 맨하튼으로 가는 길

 

오늘을 있게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그 사람들을 만나서 다행이다. 행복하다.

 

/

 

2017.02.27

 

#1

숙소

 

숙소에 사람이 꽉 차 있을 때 왔는데, 마지막에 혼자 남았다. 어쩐지 상징적이다.

 

#2

공항

 

이번 여행에서는, 내 마음 속 어두웠던 부분에 불 하나를 밝힌 것 같다.

 

#3

인천 행 비행기

 

억지로 나를 사람들에게서 떼어놓지 않아도, 낯선 곳으로 도망치지 않아도, 내가 사는 곳에서, 나의 사람들 속에서, 이 빛을 지킬 수 있다면. 나 자신이 언제나 선명할 수 있다면.

 

#4

 

저마다 사람은 그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단 한 번뿐이며 아주 특별한, 어떤 상황에서도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상의 많은 현상이 오로지 한 번 그곳에서 교차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하나의 점인 것이다. 저마다 살면서 어떻게든 세상에서 뜻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것이다.

 

저마다 삶은 자아를 향해 가는 길이며, 그 길을 추구해나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고자 끊임없이 추구하는 좁은 길을 암시한다. 지금껏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이 없었음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어떤 이는 모호하게, 어떤 이는 좀 더 투명하게, 누구든지 그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한다.

 

우리는 같은 심연에서 시작된 시도이고 투척이다. 하지만 자신 나름대로의 목표를 실천하며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삶의 의미는 자기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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