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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transcription/「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____ 01. 출발 _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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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의사 마리아나 코세이사옹 에사. 헌책방 주인 시몽이스. 

 

햇살은 그가 과거로 돌아서지 못하게 했다. 빛나는 광채는 지나간 모든 것을 아주 낯설고 거의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했고, 과거의 그림자를 모두 지워버릴 정도로 눈부셨다. 모습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떠나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 

 

그녀의 포르투갈어를 듣자 키르헨펠트에서 만난 신비한 여자가 "포르투게스"를 발음할 때 느꼈던 요술 같은 감정이 되살아났다.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이 갑자기 의미 있는 일로 변했다. 물론 이 의미는 특정한 이름으로 불릴 수는 없었고, 또 말로 표현함으로써 폭력을 가해서는 안 되는 의미였다. 

 

『대지진』

『흑사병』

『신부 아마로의 죄』

『불안의 책』

 

그는 지금 진정한 의미에서 이 도시에 도착하려는 참이었고, 베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기 위해 오늘 저녁에 다시 공항에 전화를 거는 일이 없도록 이 감정을 더 많이 느끼길 원했다.

 

9 /

프라제네스 공동묘지. 헌책방의 옛 주인 코우팅뉴 노인. 

 

그레고리우스가 그에게 이야기를 할 때의 음색은, 야간열차에서 주제 안토니우 다 실우베이라에게 말할 때와는 달랐다. 특히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만난 이상한 포르투갈 여자와 그녀가 이마에 적은 전화번호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모두 했기 때문에 아주 다르게 들렸다. 

 

그레고리우스를 문까지 배웅하다 말고 그가 갑자기 책장에서 그리스-포르투갈어 신약성서를 꺼내 들었다. 

"이걸 왜 주는지 나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가져가시오."

마당을 가로지르면서 그레고리우스는 노인의 이 말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문 밖으로 부드럽게 밀었을 때 등에 닿았던 그의 손길도.

 

10 /

가헤트 거리.

 

_ 내부 바깥의 안쪽. 얼마 전 6월의 어느 날 오전, 아침의 광채가 고요한 골목으로 밀려올 때 가헤트 거리에 있는 어떤 진열창 앞에 서 있다가 반사되는 빛 때문에 진열된 물건 대신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 자신이 나에게 방해가 되어 성가셨다. 더구나 이 모습은 내가 나 사실 나 스스로를 방해하고 있다는 상징과 같았으니…….

 

_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외모에서 스스로를 알아채지 못할까? 그들에게도 자신의 영상이 천박한 왜곡으로 가득 차 있는 무대처럼 생각될까? 그들도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과 그들 스스로 경험하는 방식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느낄까? 그들에게도 내면의 익숙함과 외부의 익숙함이 서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동일한 사람의 익숙함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을 정도일까?

  이런 의식이 불러오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는, 스스로의 눈에 비치는 우리 바깥 모습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욱 커진다. 사람들이 타인을 보는 방식은 집이나 나무, 별을 볼 때와 사뭇 다르다. 이들을 특정한 형식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자기 내부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는 기대를 가지고 보는 것이다. 각 사람의 상상력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소원과 기대에 맞게, 하지만 또한 그들로부터 자신의 불안과 선입견이 옳다는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이들을 각자의 구미에 맞추어 가지런하게 정리한다. 우리는 편견 없이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의 외적인 윤곽에조차 다다르지 못한다. 우리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도중에 이미 딴 곳으로 돌아가고, 우리를 우리라는 사람으로 만드는 특별하고 특이한 온갖 소원과 환상으로 흐려진다. 내면세계의 외부세계조차도 우리 내면세계의 한 부분이다. 

 

_ 이런 낯섬과 거리감은 해악인가? 화가가 우리를 그린다면 서로를 향해 멀리서 팔을 뻗치고 있는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기 위해 헛된 몸짓을 하는 사람들로 그려야 할까? 아니면 보호벽이 되기도 하는 이중 장애물의 존재에 안심하는 모습을 표현해야 할까? 서로를 낯설게 하는 이 보호벽에, 그리고 이 생소함이 가능케 하는 자유에 감사해야 할까? 해석된 몸이 주는 이중 굴절이라는 보호벽 없이 우리가 마주 선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사이를 분리하거나 조작하는 것이 없어 서로 보는 즉시 와락 달려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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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안경. 마리아나 에사와 함께 타호 강 유람선.  

 

새 안경으로 세상은 더 넓어졌고, 공간은 실제로 3차원이 되어 사물들이 마음껏 몸을 펼 수 있었다. 전혀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타호 강은 더 이상 흐릿한 갈색 평면이 아니라 그야말로 강이었고, 상 조르지 성은 하늘을 향해 세 방향으로 솟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세상은 피곤했다. 콧잔등에 놓인 가벼운 테가 편하기는 했지만, 그에게 익숙한 무거운 걸음걸이는 가벼워진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세상은 더 가까워지고 강제적이 되었으며, 뭔가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에게서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보이지 않는 이 요구가 너무 커지면 모든 것과 거리를 유지하게 하고 단어와 글 저편에 과연 외부세계가 있기나 할까 라는 의심 - 이 의심은 즐겁고 소중했다. 이런 의심이 없는 삶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 을 가능하게 했던 옛날 안경을 다시 썼다. 그러나 새로 얻은 세상도 이제 잊을 수는 없었다. 

 

"헤시스텡시아(Resistên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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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집. 프라두의 여동생 아드리아나.

 

자기 삶과는 완전히 달랐고 자기와는 다른 논리를 지녔던 어떤 한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일까. 이게 가능할까. 자기 시간이 새어나가고 있다는 자각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호기심은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지금 자신이 궤도를 막 벗어나려 하고 있다는 위협적인 감정과 싸웠다.

 

그 집 앞에 서서 숨을 크게 두 번 들위시고 아주 천천해 내쉰 다음 초인종을 눌렀다.

중세 때 만들어진 종에서 나는 듯한 덜걱거리는 종소리가 온 집을 시끄럽게 울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불도 켜지지 않았고,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레고리우스는 잠깐 조용히 기다린 다음 다시 한 번 눌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긴장이 풀려 지친 몸을 돌려 문에 기대고, 베른의 집을 생각했다. 이제 모든 일이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홀가분했다. 프라두의 책을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집 열쇠를 만져보았다. 그리고 몸에서 몸을 떼고 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창문에 불빛이 비치고, 발소리가 문 쪽으로 다가왔다.

"켕 에(Quem é? : 누구요)?"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