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transcription/「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49) 썸네일형 리스트형 3권 / 게르망트 쪽 ____ 05. 빌파리지 부인의 살롱 사실 빌파리지 부인이 특별히 격찬하던 중용과 절제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열광시킬 만한 장점이 아니었다. 절제에 대해 설득력 있게 말하려면 절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어떻게 보면 거의 절제 없는 열광을 전제로 하는 작가의 재능이 필요하다. 나는 발베크에서 빌파리지 부인이 몇몇 위대한 예술가의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예술가들을 세련된 방식으로 조롱하면서 자신의 몰이해에 뭔가 재치 있는 우아한 형태를 부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었다. 그러나 이런 재치나 우아함도 부인이 밀고 나가는 수준에서는 - 다른 면에서는 위대한 작품의 진가를 무시하기 위해 발휘되었다 해도 - 그 자체로 진정한 예술적 장점이 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장점은 의사들이 말하듯이 모든 사교적 지위에 대해 선택적으로 독이 되고.. 3권 / 게르망트 쪽 ____ 04. 생루, 라셸과의 식사 나는 생루에게 우리가 점심 식사를 할 레스토랑이 (돈을 낭비하는 젊은 귀족의 삶에서 레스토랑은 아랍 콩트에 나오는 옷감 상자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메가 발베크에서의 한 철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 책임자로 일할 것이라고 내게 알려 주었던 바로 그 레스토랑이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그토록 여행을 꿈꾸면서도 거의 하지 못했던 내게, 발베크의 추억에 속한다기보다는 발베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피로와 강의 때문에 내가 파리에 남아 있어야 할 때도, 에메는 매해 발베크에 가서 7월의 기나긴 오후 동안 저녁 식사 하러 오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해가 바닷속으로 내려가 잠드는 모습을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는데, 해가 사라진 후 유리창 뒤로 푸르스름한 배.. 3권 / 게르망트 쪽 ____ 03. 동시에르 01. 호텔 /// 대지 풍경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발베크 해변에서 가까운 그곳은 광막한 들판에 둘러싸인 작고 귀족적인 군사 도시로, 화창한 날씨에는 멀리서 끊어지듯 이어지는 음향 안개가 떠돌면서 - 구불구불하게 늘어선 포폴러 장막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시냇물의 흐름을 그리면서 - 훈련 중인 부대의 이동을 드러내고, 길과 거리와 광장의 대기조차 끊임없는 군대 음악의 진동으로 물들며, 짐수레나 전차의 가장 평범한 소리가 환각에 젖은 귀에는 정적 속에서도 무한히 되풀이되는 나팔 소리의 아련한 호출로 이어진다. 그곳은 사실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았으므로 급행을 타면 그날로 어머니와 할머니 곁으로 돌아가 내 침대에서 잠을 잘 수도 있었다. 이런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고통스러운 열망에 사로잡혀, 파리에 돌아가지 .. 3권 / 게르망트 쪽 ____ 02. 오페라좌 사실을 말하자면, 몇 해 전에 그토록 내 마음을 흔들었던 라 베르마의 목소리를 들을 가능성에 나는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전에 내 건강이나 휴식보다도 더 좋아했던 것들에 대한 무관심을 확인하면서 뭔가 슬픔 같은 걸 느꼈다. 내 상상력이 엿본 현실의 소중한 조각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열정이 사그라져서가 아니었다. 이제는 내 상상력이 그 현실의 조각들을 위대한 여배우의 대사 낭송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스티르를 방문한 후부터 지난날 라 베르마의 연기와 비극 예술에 대해 가졌던 나의 내적인 신앙은 이제 몇몇 장식 융단이나 현대 그림들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나의 신앙이나 욕망이 라 베르마의 대사 낭송이나 그녀 자태에 더 이상 지속적인 찬미를 보내지 않게 된 후부터, 내 마음속에 지녔던.. 3권 / 게르망트 쪽 ____ 01. 게르망트 저택의 별채 '이름'이, 우리가 그 이름에 불어넣는 낯선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현실의 장소를 가리켜 그 미지의 것과 현실의 장소를 확인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면, 우리는 도시가 담을 수는 없지만 그 이름과 분리될 수 없는 영혼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때 이름은 우의적인 그림에서처럼 도시나 강에만 개별성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세계, 그리고 사회적인 세계마저 차이로 아롱지게 하면서 경이로운 사람들로 가득 채운다. 그리하여 각각의 성이나 저택 혹은 이름난 궁전은, 마치 숲에 고유한 정령이, 물에 고유한 여신이 있듯이, 자신만의 여인이나 요정을 지닌다. 때때로 이름 깊숙이에 몸을 숨긴 요정은, 우리 상상의 삶이 키우는 정도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내 마음속에서 여러 해 동안 환등기의 슬라이드와 성당 .. 2권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____ 21. 발베크에서의 아침 사실 발베크를 떠나야 했다. 벽난로와 난방장치가 없는 이 호텔에 오래 머무르기에는 추위와 습기가 너무 깊이 파고들었다. 게다가 이 마지막 몇 주 동안의 일들을 나는 거의 금방 잊었다. 발베크를 생각할 때면 거의 변함없이 떠오르는 모습은, 화창한 계절에는 오후마다 알베르틴과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외출해야 했으므로, 할머니가 의사의 명령에 따라 아침마다 나를 억지로 어둠 속에 잠들게 한 그 순간들이었다. 지배인은 내가 있는 층에서는 소음을 내지 않도록 명령했고, 그 명령이 잘 지켜지는지 몸소 감시하러 왔다. 햇빛이 너무 눈부셔 첫날 저녁 그토록 내게 적대감을 내뿜던 커다란 보랏빛 커튼을 나는 그대로 닫은 채 두었다. 하지만 프랑수아즈가 저녁마다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자신만이 풀 수 있는 핀으로 커튼이나 담.. 2권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____ 20. 알베르틴의 방 나는 알베르틴이 예약한, 골짜기 쪽으로 면한 방에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벨을 눌렀다. 승강기 의자에 앉는 지극히 사소한 동작마저도 내 마음과 직접 관계가 있었으므로 감미롭게 느껴졌다. 승강기를 들어 올리는 줄이나, 걸어서 올라가는 몇 개의 계단도 내게는 내 기쁨이 물화된 기구나 계단으로만 보였다. 복도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면 그 장밋빛 몸이라는 소중한 실체가 갇힌 방에 이를 수 있었고, 뭔가 감미로운 행위가 벌어질 그 방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숙박객들에게는 다른 모든 방들과 비슷해 보이겠지만, 방의 물건들을 집요하게 침묵시키는 중인,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신중한 친구, 침범할 수 없는 쾌락의 수탁인으로 만드는 그런 영속성을, 그런 존재의 모습을 띠게 되리라. 층계참에서 알베르틴의 방으로 가는 .. 2권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____ 19. 나의 방 우리는 돌아가려고 다른 소녀들을 찾으러 갔다. 이제 난 알베르틴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난 그녀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샹젤리제에서의 놀이 이후로 내가 전념하는 대상은 언제나 같았지만, 내 사랑의 관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정 고백과 선언은 이제 내게 있어 사랑에 반드시 수반되는 중요한 장면으로 보이지 않았고, 사랑 역시 어떤 외적인 현실이 아니라 그저 주관적인 기쁨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 기쁨도, 알베르틴이 내가 그걸 느낀다는 걸 모르는 만큼 더욱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가 필요한 일을 해줄 거라고 느껴졌다. 우리가 돌아오는 동안, 다른 소녀들이 발산하는 빛 속에 잠긴 알베르틴의 이미지는 내게 있어 유일한 이미지는 .. 이전 1 2 3 4 5 6 7 다음